정유라씨 각종 특혜에 뿔난 대학생들
국립대 총장공석 등 누적된 朴정부 불신 폭발
연관된 대학 자성 분위기도…학생들 교수 비판까지
[ 김봉구 기자 ] 비선 실세 최순실씨(최서원으로 개명)의 국정개입 사태에 대한 대학가 시국선언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31일에도 한양대·부산대·광운대·가톨릭대·덕성여대 등 여러 대학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앞서 시국선언을 발표한 성균관대·경희대·경북대·전남대·청주대 등의 교수를 비롯해 수많은 대학 학생들이 내놓은 지금까지의 시국선언을 살펴보면 몇 가지 경향성이 눈에 띈다.
◆ "우리에게는 헬조선, 그들만의 천국"
우선 대학생들의 분노다. 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밝혀지는 핵심 고리 역할을 한 정유라씨에 대한 각종 특혜 의혹이 분노에 불을 지폈다. 정씨에 대한 입학 및 학사 관리 특혜 의혹으로 이화여대는 총장이 사임했고 이날부터 교육부 특별감사까지 받게 됐다.
“우리 대학생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건강한 노력의 대가를 배워왔던 우리에게 지금의 대한민국은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전북대 학생들이 발표한 시국선언문에는 평범한 대학생들이 이번 사태를 대하는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전북대생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학자금 대출을 갚으려 시간을 쪼개 땀 흘려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점과 진로를 위해 밤낮 없이 공부에 매진하는 우리를 어떤 말로 위로해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앞서 이대 학생들도 “비선 실세 최순실의 자녀가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하고, 온갖 비상식적인 학사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2012년 대선 슬로건에 빗대어 “최순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대학생으로서의 일상 대부분이 특혜 의혹으로 점철된 정유라씨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돈도 실력”, “너희 부모를 원망하라”고 언급한 것도 공분을 자아냈다.
한양대생들은 “‘돈도 실력이기에 너희 부모를 원망’하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의 실력이며, 우리의 원망과 비판은 반칙을 일삼는 이들을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대생들도 “우리에게는 ‘헬조선’이라 불리는 한국 사회가 그들에게는 천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를 느낀다”고 강조했다.
◆ 영남지역 대학 교수들까지 돌아섰다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지식인의 사회참여’라는 소명의식을 지닌 교수들의 시국선언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단 전대미문의 비선 실세 파문으로 국가의 근간이 흔들렸다는 점에서 비판의 수위는 한층 높아졌다.
다음달 2일 전국 규모 시국선언을 예고한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민교협)는 성명을 내고 박 대통령을 “부적격자이자 헌정파괴의 주체”로 규정했다. 거국내각 구성 등의 조건은 전혀 달지 않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 하야를 요구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총장직선제 폐지 갈등, 총장 임용제청 거부 등으로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이 누적된 국립대 교수들의 비판이 날카롭다. 박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TK(대구·경북)와 PK(부산·울산·경남) 지역 거점대학인 경북대, 부산대 교수들이 남 먼저 시국선언에 나선 것이 이를 입증했다.
경북대는 2년2개월간의 총장 공백 끝에 최근 정부가 별다른 설명 없이 2순위 총장 후보자를 임명했다. 1순위 후보자 김사열 교수가 청와대 실세의 반대에 막혀 거부당했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고(故) 고현철 교수의 투신 사망을 계기로 정부 방침에 반해 총장직선제를 부활시킨 부산대도 9개월 가량의 총장 공석 사태를 빚었다.
이에 대해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국교련) 관계자는 “교수들은 박근혜 정부가 대학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국립대 길들이기’ 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작금의 국정 농단 사태뿐 아니라 그동안 현 정부에 쌓인 분노가 분출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 캠퍼스에 뻗친 권력의 '검은 그림자'
최순실 게이트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대학들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박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학생들은 “선배님께서는 더 이상의 서강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강조했다. 정유라씨 특혜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이화여대 학생들도 최경희 전 총장을 비롯한 몇몇 교수의 실명을 거론하며 사과와 사퇴를 요구했다.
한양대 교수들은 이날 시국선언에서 “비선 실세의 무리에 우리 학교를 비롯해 여러 대학의 교수 출신들이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언급했다. 최순실씨와 연계된 체육계 각종 비리 의혹으로 30일 사의를 표한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한양대 교수 출신이다.
연세대 학생들은 미르재단 초대 이사장을 지낸 이 대학 김형수 교수가 검찰 소환조사를 받자 ‘정말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습니까?’란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김 교수는 최순실씨를 고리로 문화·예술계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지목된 차은택 감독의 대학원 은사다.
또 다른 ‘차은택 인맥’으로 지목된 김종덕 전 문화부 장관은 홍익대 교수,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숙명여대 교수 출신이다. 김 전 장관은 차 감독의 대학원 스승이자 차 감독이 일했던 광고제작사 대표이기도 했다. 김 전 수석은 차 감독의 외삼촌이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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