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노동의 역습
크레이그 램버트 지음 / 이현주 옮김 / 민음사 / 336쪽 / 1만6000원
[ 고재연 기자 ]
“미안한데, 이것 좀 확인해 줄 수 있을까?” 퇴근 후 상사에게 이런 메시지를 받은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주말이라고 예외는 없다. 단체 채팅방이 수시로 울려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업무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기술은 발전했는데 여가 시간은 사라지고 있다. 1928년 경제학자 케인스는 “2028년이 되면 기술 발전으로 하루 세 시간만 일해도 되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여가 시간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현대인은 오히려 더 바빠졌다. 《하버드 매거진》 편집자로 20년 넘게 일한 저널리스트 크레이그 램버트는 오스트리아 사상가 이반 일리치가 주창한 ‘그림자 노동’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림자 노동은 보수를 받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포장된 노동을 의미한다. 회사는 직원에게, 기업은 소비자에게, 기술은 사람에게 이 일들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출퇴근 행위 역시 고용주에게 이익이 되는 무급의 노동이라고 설명한다. 매일 평균 1시간 이상의 시간과 돈을 잡아먹기 ㏏?甄? 1주일에 한두 번만 재택근무를 허용하면 길에서 내버리는 막대한 시간을 아낄 수 있지만 회사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에는 대가를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 역시 소비자에게 그림자 노동을 떠넘긴다. 쇼핑도, 여행도, 서비스도 ‘셀프서비스’인 시대에 소비자는 알게 모르게 ‘잡일’에 시달린다. 싼 비용은 미끼다. 셀프 주유소에서 직접 주유를 하고, 식당에는 종업원 대신 주문용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다.
익스피디아 등 인터넷 여행 사이트는 여행사 직원들이 가지고 있던 독점적인 전문 지식을 대중화했다. 동시에 여행객이 처리해야 할 수많은 그림자 노동을 만들어 낸다. 적합한 가격과 위치를 고려해 숙소를 검색하고, 최저가 비행기표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한다. 고객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ARS 안내에 따라 몇 차례 선다형 질문에 답한 뒤에도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입니다. 통화 대기 시간은 20분입니다”라는 절망적인 멘트를 들어야 한다.
저자는 그림자 노동이 만들어내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그린다. 기업을 비롯한 거대 기관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징발한다. ‘일에 대한 숭배’는 그림자 노동을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의 토대가 된다. 저자가 우리의 무의식에 가라앉아 있는 그림자 노동을 수면 위로 꺼내 ‘선택의 문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