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이 부끄럽습니다"…최순실·백남기 '외풍'에 흔들리는 상아탑

입력 2016-10-26 11:01
수정 2016-10-26 18:23
"권력과 유착" 스승 불신하는 제자들
서울대·연대·이대 등 캠퍼스 곳곳 '시끌'



[ 김봉구 기자 ] 지난 25일 찾은 이화여대 생활환경관. 굳게 닫힌 연구실 문 주변으로 수많은 말(馬)들이 나붙었다. 교수 명패 위로는 “우리 교수님이 이럴 리 없다”는 ‘웃픈(웃기고 슬픈)’ 풍자를 담은 벽보가 보였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최서원으로 개명) 딸 정유라씨에 대한 학점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이 대학 의류산업학과 이인성 교수의 방이었다. 이 교수에게 호소하는 학생의 글도 있었다. 굵은 글씨만 따서 읽으면 “노력했습니다, 허무합니다, 회의감이 듭니다”였다.

어두운 권력의 끈은 캠퍼스에까지 이어져 있었다. 명문대 교수들이 권력과 유착 관계를 맺은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학생들은 반발했다. 대자보를 써 붙이고 성명을 발표하는가 하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제자들이 스승을 불신하는 모양새다. 대학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인성 교수는 최근 사임한 최경희 전 총장의 측근으로 꼽혔다. 그는 지난 여름 중국에서 열린 4박5일 패션쇼에 참여하는 계절학기 수업에 정씨가 불참했지만 학점?줬다. 이 과정에서 정씨를 각별히 챙긴 정황도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이 교수는 정씨 입학 후 정부 연구과제를 대거 수주해 총 55억원의 연구비를 받았다.

학과 수업이 진행되는 강의실·실습실 벽면은 수십장의 대자보와 벽보가 빼곡하게 채웠다. 이 교수에게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자문해 보라. 인간으로서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있다면 지금 당장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요구하는 글이 특히 눈에 띄었다.

“지식의 상아탑이 권력의 장으로, 사제지간이 갑을 관계로 변모하는 이대의 현주소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교수라는 직책을 악용·남용하여 특정 학생에게 특혜를 제공하고 비리를 저지르고도 시치미 떼는 이인성의 인성을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등의 글귀는 학생들의 실망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같은날 찾은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건물에도 ‘정말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습니까?’란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미르재단 초대 이사장을 지낸 김형수 커뮤니케이션대학원장의 검찰 소환조사에 대한 학생들 반응이었다.

학생들은 지난 23일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두한 김 원장이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말한 데 대해 이같이 따져 물으면서 “어째서 낯 뜨거운 감정은 학생인 우리의 몫인가”라고 항변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 대학원과 연세대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소속 학생들과의 신뢰를 저버렸다”고도 했다.

김 원揚?최순실씨를 고리로 문화·예술계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지목된 차은택 광고 감독의 대학원 은사다. 미르재단 관련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달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차 감독의 외삼촌인 김상률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지냈다. 역시 차 감독의 영향력으로 보인다. 2014년 교문수석 임명 당시에도 의외란 평이었다. 김 교수의 성향과 이력이 박근혜 정부 ‘코드’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차은택이라는 퍼즐 조각을 넣으니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반응이 뒤따랐다.

다만 김 교수 자신이 직접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이를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은 아니어서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학교에서 강의 중인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사안은 다르지만 서울대 학생들도 25일 학내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의대 백선하 교수의 해임을 촉구했다. 백 교수는 고(故) 백남기씨 주치의로 사망진단서에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해 논란을 빚었다. 이날은 경찰의 백씨 시신에 대한 압수수색검증영장(부검영장) 집행 만료일이었다.

서울대생들은 “많은 전문가들 의견이 외인사를 가리키는데 백 교수는 병사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체 그는 무엇을 위해 이런 소신을 주장하고 있단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불명예스러운 행위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본인의 학문 영역에서 심각한 오류를 저지른 교수를 처벌하는 것은 마땅히 대학 본부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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