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경제 위기론] 길 잃은 간판기업들 "내년이 두렵다"…10곳 중 6곳 사실상 '성장 포기'

입력 2016-10-23 18:27
한경, 30대그룹 '내년 사업계획' 긴급 설문

글로벌 침체에 환율 등 대내외 변수 안갯속
59% "경영환경 더 악화"…15% "투자 줄일 것"
삼성·현대차 등도 공격 투자 엄두 못내


[ 장창민/김현석/정지은 기자 ]
국내 간판 기업들이 길을 잃었다. 내년 사업계획 윤곽조차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국내외 경기침체에 환율, 유가 등 대내외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내년 매출과 영업이익, 투자 규모 등을 정확히 가늠하지도 못하는 분위기다. ‘눈앞이 캄캄하다’는 반응이다. 공격적 투자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플러스(+) 성장마저 포기한 곳이 많아지고 있다.


내년 ‘공격 투자’ 엄두도 못 내

한국경제신문이 23일 30대 그룹(자산 기준, 공기업과 금융회사 제외)을 대상으로 ‘내년 경기전망 및 사업계획’에 대해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복잡다단한 대내외 변수로 30대 그룹(설문 응답기업 27곳)의 절반가량(48.1%)은 내년 사업계획 윤곽도 잡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업들은 미국 금리 인상 우려, 환율 급변, 중국과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갈등, 북한 핵실험 등으로 경제 환경이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와 내년 한국 대선 등 정치적 변수도 경영환경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변수들로 대기업 열 곳 중 여섯 곳(59.3%)은 내년 경영환경이 올해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30대 그룹 대부분은 내년 투자와 채용, 매출·영업이익 목표를 올해 수준으로 잡는 등 보수적 경영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30대 그룹의 59.3%는 내년 투자계획과 관련해 ‘올해와 비슷하다’고 답했다. ‘줄인다’는 기업도 14.8%나 됐다. ‘늘린다’고 답한 곳은 22.2%며, 기타(답변 안 함)는 3.7%였다. 내년 채용 계획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30대 그룹의 66.7%가 ‘올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답했다. ‘늘린다’와 ‘줄인다’고 답한 기업은 각각 14.8%였다. 한 개 기업(3.7%)은 답변하지 않았다.

내년 매출·이익 목표마저 올해와 비슷하게 잡은 그룹도 많았다. 사실상 전년 대비 성장을 포기한 셈이다. 30대 그룹의 59.3%는 내년 매출·이익 목표를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잡겠다’고 답했다. 통상 기업들이 해마다 전년 대비 5~10%가량 매출 성장 목표를 높여온 것과는 딴판이다. ‘높인다’(33.3%)와 ‘기타’(답변 안 함·7.4%) 순으로 뒤를 이었다.

30대 그룹 절반(48.2%)은 내년 평균 원·달러 환율을 ‘달러당 1150~1200원’ 수준으로 예상했다. 응답기업 44.4%는 ‘달러당 1100~1150원’으로 전망했다.

내년 사업계획 놓고 “눈앞이 캄캄”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마저도 내년 투자와 채용 규모 등을 가늠하기 어려워하는 분위기다. 삼성그룹은 내년 경영환경이 올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안정되고 있는 국제유가 외엔 좋아질 대내외 변수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 등 각 계열사는 최근 사업부별로 내년 사업계획 초안을 짜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에 보고했다. 미래전략실 전략팀은 계열사가 낸 계획서를 검토 중이다. 최종 사업 계획은 12월 초 사장단 인사가 단행된 뒤 중순께 각 사별로 열리는 전략협의회 및 삼성사장단 세미나 등을 거쳐 확정된다. 삼성은 경영환경 악화에 따른 위기를 신사업 관련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연간 글로벌 자동차 판매 목표를 올해 수준(813만대)으로 잡거나 조금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내수 급감, 미국 유럽 등 해외 시장 위축, 환율 변동,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할인 압박 등이 겹치면서 매출 둔화와 함께 수익성도 나빠질 것으로 우려했다.

그룹 고위관계자는 “내년 세계 자동차 시장 전망이 좋지 않은 데다 악재가 너무 많아 무리하게 사업계획을 짤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다음달 초안을 짜놓되 연말까지 계속 수정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SK그룹도 내년 사업宛?초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계열사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도 커지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회사마다 워룸(war room) 설치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비상경영을 주문하고 있어서다. LG그룹 역시 내년 사업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고 보수적 경영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그룹은 2014년부터 추진 중인 구조조정을 내년까지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GS그룹은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비하고 계열사별 성장 정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사업계획에 담기로 했다. 한화그룹은 내년까지 방산계열사 중복 사업을 조정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한진그룹은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인해 떨어진 그룹 신뢰를 회복하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두산그룹도 내년 그룹 차원의 흑자기조 안착에 힘을 쏟을 방침이다.

장창민/김현석/정지은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