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확 풀었는데 경제온기는 미약
실물과 금융 엇박자에 시스템 위험
한국, 노동개혁·서비스혁신 힘써야
윤종원 < 주한OECD대사 jwyoon15@mofa.go.kr >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아야 하는데 마이너스 금리라 뜯긴다. 스위스 정부는 세금을 늦게 내는 걸 반긴단다. 산유국도 아닌데 유가가 오르는 걸 호재로 여긴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도처에 일어나고 있다. 비정상적인 일이 빈번하니 ‘뉴노멀’ 같은 거창한 말도 등장했을 터다.
2008년 위기의 충격은 세계경제 지평을 흔들어 놓았다. 진원지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8%가 사라진 1930년대 대공황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4% 남짓 GDP가 줄었고 유럽도 대량 실업과 금융 경색을 겪었다. 위기를 벗어나려고 각국이 쓴 비용은 엄청나다. 재정을 푼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채무가 GDP의 75%에서 115%로 늘었다. 통화정책에 따라 연 4~5%였던 미국, 유럽 기준금리가 0%대로 낮아졌고 미 중앙은행(Fed) 자산이 GDP의 6%에서 25%로 부풀었다. 미국, 일본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의도와 관계없이 환율과 수출입 판도에 영향을 미쳤다.
정책 유효성 평가는 아직 이르다. 위기 증폭을 막고 내상은 손봤지만 체력은 약해졌다. 화끈하게 돈을 풀었는데 경제 온기는 여전히 약하다. 세계 성장은 3% 중후반이 평소 실력인데 지금은 3%가 벅차다. 3%쯤 되던 OECD 인플레율도 0.9% 수준이다. 반면 자산가격은 저금리로 크게 올랐다. 미국, 일본 주가는 기업수익이 둔화됐지만 2010년 대비 60% 올랐고 유럽과 일본 국채는 전체의 70%가 마이너스 금리에 거래되고 있다. 선진국 주택가격도 크게 올랐다. 경제의 한 축인 실물 바퀴는 느린데 금융 바퀴만 빠른 엇박자라 시스템 위험이 우려된다. 저금리로 장단기 금리차가 낮으면 은행에 타격을 주며 연금펀드는 어려움이 가시화되고 있다. 체력이 약해 금리가 올라도 총수요 위축, 자산가격 급락 소지가 걱정이다.
정책대응을 두고 의견이 비슷한 부분이 있고 엇갈리는 이슈도 있다. △거시정책은 상황을 봐가며 서서히 조정 △과도한 통화정책 의존 완화 △구조개혁 강화 △국제공조를 하되 국별 차이 고려 등에는 의견이 모아진다. 반면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 재정 역할에서는 입장 차이가 꽤 있다. 미국, 일본과 그 영향이 큰 국제통화기금(IMF), OECD는 재정의 추가 역할을 기대한다. 저금리로 이자가 줄어 여력이 늘어났으니 더 써도 된다는 주장까지 한다. 세입 부진, 연금재정 악화로 여력이 줄어든 건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반면 독일과 영국은 건전화가 급선무라며 재정 확대에 난색이다. 금리 정상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꽤 있다.
정책 시계(視界)가 불확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하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우선 저성장이 뉴노멀이고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면 기대와 정책을 재조준해야 한다. 호시절을 그리워하며 돈을 쓰면 경제가 망가지기 십상이다. 반면 지금이 2008년 전 대호황 후유 塚?조정되는 과도기라면 참고 기다리면 된다. 현실은 이들 중간쯤 될 테니 거시정책을 견실히 쓰고 체력을 기르며 시스템 리스크를 막는 데 중점을 두면 될 것이다. 우리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응에 큰 무리가 없지만 앞으로도 상황을 세심히 살피며 정책을 펼쳐야 한다.
둘째, 차입제약이 없는 기축통화국의 논리와 처방을 섣불리 따라서는 안 된다. 산출 갭, 기대 인플레, 금융시장 위험과 우리 처지를 잘 고려해서 대응해야 한다. 셋째,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체력은 거시정책으론 길러지지 않는다. 노동 개혁, 서비스 혁신 등 답이 분명한 문제는 우리 사회가 답을 써야 한다. 한밤중이라 어두운 건지 동트기 전이라 그런 건지 머지않아 알게 되겠지만 나중에 돌이켜봐도 후회 없는 선택을 기대한다.
윤종원 < 주한OECD대사 jwyoon15@mofa.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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