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패션위크 전야제 참가
[ 민지혜 기자 ]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퇴색, 퇴적되는 자연의 질감을 좋아해요. 뭉툭한 바위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광석을 발견할 때 흥분되고요.”
1972년 여성복 ‘이따리아나’를 내놓은 한혜자 디자이너는 “자연의 질감을 옷으로 표현한 지난 40여년의 세월을 전시회에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17일부터 3주 동안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아카이브 전시회에는 그가 걸어온 44년 디자이너 인생이 담겨 있다. 한 디자이너는 블랙 계열의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드레스, 주름 잡힌 치마와 편안한 착용감의 옷으로 유명하다.
한 디자이너는 어릴 때부터 조각, 설치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20대 초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를 돕기 위해 이화여대 앞에 양장점을 차린 것이 시작이었다. “서울 안국동 오리엔탈양장학원을 다닌 뒤 여의도 엘리제양장점에서 1년 배운 게 전부”라는 그는 “여대생들이 좋아하는 패턴과 색감, 디자인의 옷을 만든 것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다. 경제 여건이 급변해도 이따리아나의 매출은 한 번도 꺾인 적이 없었다. 백화점에서 국내 디자이너들이 하나둘 퇴출됐지만 한 디자이너는 롯데 본점과 강남점, 잠실점, 현대 본점과 목동점, 부산점 등 전국 15개 점포에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비결은 한국 여성 몸매에 잘 맞는 패턴과 편안한 착용감, 다양한 소재다. 한 디자이너는 원단을 구하기 어렵던 시절부터 발품을 팔아 마음에 쏙 드는 소재를 발견하면 몽땅 샀다고 했다. 이 때문에 1998년부터 몇 년 동안 수많은 디자이너가 비싼 원단을 못 구해 매장을 접을 때도 한 디자이너는 쌓아놓은 원단을 활용할 수 있었다.
한 디자이너는 자신의 옷을 입는 단골 고객이 늘어났다는 것을 가장 보람있는 일로 꼽았다. 그는 “엄마와 딸, 그 딸의 딸이 대대로 단골이라고 찾아올 때가 가장 기쁘다”고 했다.
1984년 프랑스 파리컬렉션에 진출한 한국 1세대 디자이너인 그는 “옷을 만들 줄만 알았지 주문을 받고 해외로 수출하는 실무를 잘 몰라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젊고 유능한 디자이너를 돕기로 했다. 한 디자이너는 “해외 바이어가 한국에 쇼를 보러 온 뒤 제품을 구입하려면 쇼룸에서 직접 옷을 만져봐야 한다”며 “쇼룸을 운영할 여유가 없는 유망 디자이너 5~6명을 골라 서울 청담동 사옥에 멀티쇼룸 형태의 매장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