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체면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단어다. 굳이 ‘중국식’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중국인들과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핵심은 바로 이 ‘중국식 체면’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중국인의 ‘체면 관리’를 단순히 허례허식이나 형식주의라고만 이해하면 절대 안 된다. 평범한 중국인들도 ‘체면 관리’에 대해 어려워하고,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학자들은 오히려 더 심각하고 신중하게 여긴다. 그들은 중국인의 체면에 대해 ‘생명줄’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중국인들의 전통 사유 바탕에는 ‘체면’에 대해 복잡하고 확고한 뿌리가 있다. 임어당(林語堂)은 “중국을 통치하는 3개의 여신이 있다”며 체면(面), 운명 또는 인연(命), 보은(恩)을 들었다.
역시 체면이 으뜸이다. 체면을 파고들면 맨 아랫단에는 중국인들이 최고 경지로 여기는 군자(君子) 모습이 있다. 우리가 우리식으로 간단히 평가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군자 ?현대 시각으로 해석해본다면 완벽한 인격을 갖춘 자로서, 현실 사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위대한 스승이며 리더일 것이다. 내외적으로 완성된 인간인 군자의 모습은 중국인의 로망이다. 내적인 것은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겉모습은 드러난다.
지옥보다 더 두려운 게 체면을 잃는 것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겉모습이라도 잘 보여주고 싶고, 또 보는 이들도 그것을 중시하다 보니, 체면이 강조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중국인들조차 이런 체면의 지나친 ‘겉치레’에 대해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체면의 중시 또는 고려에 있어서, 이것이 단순히 겉치레인지 아니면 배려인지, 최소한의 자존감 표현인지, 또는 문화인으로서 지켜야 할 겸손 등 예의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방인으로서 잘 모른다면 입향수속(入鄕隨俗: 그 지방에 가면 그 지방의 풍속을 따르는 것)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우리와 ‘다른 것’에 대해 무조건 ‘틀린 것’이라고 판단하고 재단하려는 자세는 분명 섣부른 것이다.
상해탄으로 유명한 청방 보스 두월생은 “내 평생 가장 먹기 어려운 면(얼굴 면(面)자와 국수 면(麵)자는 중국어 발음이 ‘미엔’으로 같다)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체면(面), 인정(情面), 상황(面)”이라고 했다고 한다. 암흑계를 주무른 보스에게도 처세에 있어 체면 관리가 제일 어려웠다는 것이다. 임어당은 “체면은 이치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관례에 순종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19세기 말 독일의 선교사인 빌헬름은 “중국인의 체면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아마도 중국에서 가장 강렬한 도덕추진력일 것이다. 기독교인의 지옥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강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인들의 체면에 대한 관심은 의식 저변의 사유 방식을 연구하는 전문학자로부터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까지 뿌리 박혀 있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중국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분야이든간에 반드시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다.
중국어의 체면은 ‘’과 ‘面’ 두 가지 글자가 있다. 여러 가지 해석이 다양하지만, 여러 전문학자의 해석을 필자의 일천한 수준으로 쉽게 소개해 보면 ‘(개인적 수양과 관련된) 도덕적 체면’과 ‘(남들이 인정하는) 사회적 체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面’은 기원전부터 있었지만, ‘’은 원나라 이전에는 없던 한자이고 지금도 중국의 남방(특히 광둥)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글자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특히 우리 같은 이방인들은 굳이 “이 구분은 또 정확히 뭐다”라는 정의는 불필요할 것이다.
서양의 명예와도 다른 중국의 체면
‘사회적 체면’만을 보면 얼핏 ‘명예’라는 개념과 연관시킬 수 있다. 이중톈은 중국인의 체면은 서양의 ‘명예’와 비슷할 뿐 같지 않다고 말한다. 명예가 있는 이는 당연히 ‘체면’이 있지만, 체면이 있다고 해서 모두 명예가 있는 것은 아니다. 즉 명예는 누구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체면은 신분(또는 실력)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도 있다. 한편 중국인에게 명예와 달리 체면은 빌릴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잘 생긴 연예인과 함께 있다고 해서 내 외모가 멋있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의 체면은 ‘체면 있는 이들’과 같이 있으면 나도 그들처럼 같이 멋있게 보인다는 말이다. 다음 편에서 체면이 작용하는 현실적인 사례를 소개하겠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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