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딸 정유라씨, 터져나오는 '특혜 의혹'
이사진·교수들도 최경희 총장에 해명·사퇴 압박
[ 김봉구 기자 ] 고졸 직장인 대상 평생교육 단과대학 ‘미래라이프대’ 설립 갈등으로 홍역을 치른 이화여대가 이번엔 정유라씨(개명 전 정유연) 관련 의혹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씨는 청와대 ‘비선 실세’ 의혹 중심인물 최순실씨(최서원으로 개명)의 딸이다. 정씨가 이화여대 입시요강에 명시된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승마 특기자로 합격했고, 입학 후 불성실한 출석 및 과제 제출에도 학사규정과 달리 학점을 이수하는 등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화여대는 학내 경찰병력 투입 사태를 계기로 학생들이 최경희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80일 가까이 본관 점거농성을 이어오는 상황이다. 올해 개교 130주년인 이화여대가 그간 쌓아올린 명문사학의 위상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이 대학 교수협의회는 지난 13일 최 총장에게 발송한 ‘입시 관리와 학사 문란에 관한 건’ 공문에서 “이화의 교수들은 참담한 심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교협 홈페이지에 공개하면서는 “이화 교수로서 너덜너덜해진 자존심을 추스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도 했다.
공문을 보면 △수시모집 서류 제출 마감(2014년 9월16일) 후인 정씨의 아시안게임 승마 단체전 금메달 획득(2014년 9월20일)이 입시에 반영될 수 있는지 △면접 당시 정씨의 금메달과 선수복 착용이 입시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았는지 △당시 입학처장이 “금메달을 가져온 학생을 뽑으라”는 말을 했는지 등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2년간 거의 출석을 하지 않은 정씨가 문제없이 재학 중인 점, 문제가 된 계절학기 수업에서 “(정씨를) 거의 보지 못했다”는 수강생들 증언과 달리 정씨가 수업 3분의 2에 참여한 것으로 된 점 등 학사관리 문제도 질타했다. 이와 관련해 교협은 “출석 예외조항을 개정해 소급 적용한 이유와 경위에 대해 밝혀달라”고 덧붙였다.
한 이화여대 교수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문란’이라는 수위 높은 표현을 쓸 정도로 교수들의 실망감이 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교수들은 오는 19일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최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도 연다.
학교 측은 정씨의 계절학기 수업 특혜 의혹에 대해 “해당 학생은 규정에 따라 관련 증빙 서류와 교과목 이수를 위한 과제를 제출해 학점을 이수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씨가 짜깁기한 과제물을 기한 이후에 제출하고 증빙 서류 없이 면담만으로 출석을 인정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정씨의 특혜 의혹에 기름을 부은 것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입수해 공개한 담당 교수와 정씨와의 이메일 내용이었다.
이 교수는 정씨가 기한을 넘겨 이메일로 제출한 과제물을 받고 “네, 잘하셨어요”라고 답한 20여분 뒤 “앗! 첨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과제물 내용도 인터넷상 게시물을 짜깁기한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B학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소재 한 대학 교수는 “다른 대학의 사안에 대해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대학별 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혜가 아니고선 설명이 안 되는 수준”이라며 “이메일만 보면 교수와 학생 관계가 뒤바뀐 것처럼 착각할 정도”라고 꼬집었다.
정씨 특혜 의혹이 현재진행형인 학내 갈등을 넘어서는 이화여대 사태의 ‘본진(本震)’이 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앞서 문제가 된 미래라이프대 사태의 경우 사안을 달리 볼 여지가 있었다. 학내 경찰병력 투입 등 추진 과정에서의 소통 문제는 있었으나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의 취지 자체는 인정할 만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정씨에 대한 이번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화여대는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입시 비리나 학사관리 공정성 문제는 대학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이화여대가 명문대인 만큼 파장도 클 수밖에 없다.
교협은 총장 사퇴 촉구 시위의 배경으로 “이화의 추락의 핵심에는 최경희 총장의 독단과 불통, 재단의 무능과 무책임이 자리하고 있다. 거기에 이제 비리 의혹마저 드리우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들이 직접 나서기로 한 데는 ‘비리 의혹’이 방아쇠(trigger)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학생들 반발에도 사태를 지켜보던 재단까지 최 총장에게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이사진은 이달 7일 열린 이사회에서 “학내의 불신과 갈등을 초래한 부분에 대해 총장이 고민하고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씨의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학교로서도 문제가 없다면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소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교육부 차원 조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14일 국회 교문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정씨 특혜 의혹에 대해 “사실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이화여대 학칙 개정 과정과 적용이 적절하게 이뤄졌는지 등 면밀하게 조사하겠다. 사실관계를 확인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최 총장의 리더십이 크나큰 위기를 맞았다. 논란의 몸통인 정씨는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달 말 휴학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130년을 쌓아올린 명성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 지난 여름부터 흘러나오던 이화여대 교수들의 한숨이 한층 커지는 이유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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