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은행들 '백업은행' 세워 파산 막는다

입력 2016-10-13 18:33
감독당국, 지주회사 설립 지시

은행·증권 등 핵심사업 자산 이관…위기시 혈세 투입 않고 자체 해결
채권자·해외 금융당국 반발 우려…은행 구조 더 복잡해질 수도


[ 워싱턴=박수진 기자 ] 미국의 대형 은행들이 지주회사 설립에 나섰다. 금융위기로 모회사와 자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지주회사가 은행과 증권 등 핵심업무 기능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방안이다. 이렇게 하면 금융위기 때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혈세를 구제금융에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감독당국이 지주회사 설립 지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JP모간체이스와 웰스파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뱅크오브뉴욕멜론, 스테이트스트리트 등 미국 5대 대형 은행이 금융감독당국 지시에 따라 지주회사를 세우고 있다고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중앙은행(Fed)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최근 이들 은행으로부터 ‘회사 정리계획서(생전 유언장·living will)’를 접수하면서 이 같은 지주회사 설립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정리계획서는 금융위기 시 구제금융을 받지 않고 어떻게 회사를 정리할지 관련 계획을 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제정된 ‘도드프랭크법’은 자산 500억달러 이상인 8개 은행에 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지금까지 8개 은행 중 씨티은행 등 3개가 심사를 통과하고 웰스파고 등 5개 은행은 퇴짜맞았다.

○대마(大馬) 정리하되 시스템은 살려

WSJ는 이번 지주회사 설립 방안이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진일보한 금융감독 조치로 평가했다. 정리계획서를 마련해 대형 은행도 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데 그치지 않고 위기 시 은행의 핵심 기능이 유지되도록 해 은행 파산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단계까지 고려했다고 분석했다.

지주회사는 모회사와 계열사 중간에 위치한다. 반드시 미국에 설립돼야 하며 위기 때 은행과 증권 등 핵심 계열사 인력과 자산을 이관받아 업무를 유지하게 된다. 모회사 및 자회사의 채무를 승계하지 않으며, 파산위기에 처했을 때 긴급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 금융위기가 다시 발생하더라도 은행 업무를 계속하면서 구제 기능까지 하는 일종의 ‘백업(back-up) 은행’을 두자는 방안이다.

JP모간체이스는 이미 이런 지주회사를 세웠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기존 자회사를 지주회사로 바꿀 계획이다.

○해외 금융감독당국과 분란 소지 커

그러나 백업은행 설립 방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기의 계열사에서 지주회사로 핵심 자산을 이관할 때 기존 채권자의 반발을 살 수 있어서다. 자신들이 받아야 할 돈이 지주회사로 이관되면 채권이 동결된다. 이관의 적법성을 놓고 대규모 소송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해외 금융감독당국 역시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Fed는 지주회사를 반드시 미국에 두도록 제한하고 있다. 해외 계열사 자산도 미국으로 옮기도록 하고 있다. 당장 자국 채권자와 금융시스템을 보호해야 할 해외 금융감독당국이 가만있을 리 없다.

WSJ는 “세계 감독당국 간 합의가 필요한 방안”이라며 “이미 그 부분에서 합의안을 내놓는 데 실패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지주회사 설립이 지배구조를 더 복잡하게 한다는 이유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보스턴대 금융·법률·정책센터의 코르넬리우스 헐리 연구원은 “안 그래도 복잡한 금융회사 구조를 더 복잡하게 해 문제를 키울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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