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거농성, 총장사퇴…대학총장 운명 가르는 '이·학·교'

입력 2016-10-13 13:29
수정 2016-10-13 23:34
이화여대 이어 서울대 학생들도 본관 점거
서울대 시흥캠퍼스, 서강대 남양주캠퍼스 '엇갈린 반응'



[ 김봉구 기자 ] 캠퍼스가 몸살을 앓고 있다. 7월 말부터 80일 가까이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화여대에 이어 이달 10일 서울대 학생들도 본관 점거 후 농성에 돌입했다. 각각 학교가 추진한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제2캠퍼스(분교)를 문제 삼았다. 서강대 유기풍 총장은 지난달 말 법인 이사회를 강력 비판하며 사퇴했다.

13일 대학들에 따르면 최근 학내 갈등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관점의 차이다. ‘확장’과 ‘개발’ 위주 경영방침과 대학의 본질은 ‘상아탑’이라는 입장이 충돌했다. 또 하나는 구조의 문제다. 대학 시스템은 학교와 법인으로 이뤄져 있다. 학교 구성원 다수 의견이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이사회와 어긋날 때 마찰을 빚는다.

이들 갈등 요인이 지금 폭발한 이유는 다시 두 가지 핵심요소로 설명할 수 있다. ‘시간’과 ‘재정’이다. 대학이 상아탑을 벗어나 경영해야 하는 거대 조직으로 탈바꿈한 지 십수년이 흘렀다. 대학간 글로벌 경쟁 환경 역시 수백억원 단위 재원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대학답지 않다”는 누적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 닮았지만 속내 다른 '학내 갈등 양상'

서울대 학생들은 대학 본부의 시흥캠퍼스 강행을 본관 점거 명분으로 내세웠다. 본관 점거에 앞서 전체 학생총회를 열어 시흥캠퍼스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참석 학생 1980명 가운데 1483명(74.9%)이 ‘시흥캠퍼스 철회’에 표를 던졌다. 앞서 서울대는 올 8월 ‘서울대 시흥캠퍼스 조성을 위한 실시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학교의 불통(不通)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11일 기자회견에서 “학교 측이 시흥캠퍼스 실시협약을 맺기 전에 학생들과 협의하기로 해놓고 약속을 파기했다. 더는 학교와의 소통을 기대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불통 문제는 이대생들의 장기 농성 동력원이다. 이들이 당초 요구한 미래라이프대학(평생교육단과대) 철회는 조기에 수용됐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팽팽하게 대치하는 것은 최경희 총장 사퇴를 추가로 내건 탓이다. 경찰 병력 1600여명 학내 투입이 불통 논란을 키웠다. 이사회마저 “총장이 책임 지고 해결하라”며 촉구하고 나섰다.

소통 문제를 고리로 한 학생 점거라는 점에선 같지만 내용은 다르다. 서울대는 제2캠퍼스 추진, 이대는 정부 지원사업 선정이 문제가 됐다. 남양주캠퍼스 추진을 놓고 이견을 보인 서강대가 서울대 시흥캠퍼스와 유사한 케이스로 분류된다. 하지만 서강대는 이사회가 남양주캠퍼스 추진에 제동을 걸어 쟁점이 됐다는 차이가 있다.

캠퍼스가 좁은 서강대는 그동안 ‘제2의 도약’ 거점으로 남양주캠퍼스를 추진해 왔다. 그런데 이사회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학교 측과 상반된 의견을 냈다. 이사진 과반수를 차지한 가톨릭 예수회 소속 신부들 의견이 결정적이었다.

이에 유기풍 전 총장은 작심하고 이사회를 비판했다. “지금의 서강대는 예수회의 사유물이나 다름없다”고 규정한 그는 “남양주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예수회의 독선과 파행의 부작용이 낱낱이 드러났다. (서강대가 어려워진) 근본적 원인은 재단 이사회의 무능, 그리고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예수회의 전횡”이라고 지적했다.

한 주 뒤, 역시 재단과의 갈등설 속에 사의를 표한 노석균 영남대 총장이 “모든 일은 제가 법인과 소통하지 못한 탓”이라고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린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라 할 만큼 이사회를 겨냥해 수위 높은 비판을 쏟아낸 것이다.

◆ '이·학·교'가 관건…"문제는 거버넌스"

이들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내 갈등이 격화돼 작년 말 이사진 전원이 사의를 표한 동국대, 학사 구조조정으로 알력을 빚다 이용구 전 총장이 개교 이래 첫 불신임을 당한 중앙대, 박철 전 총장의 명예교수 임용에 반대한 학생들이 중징계를 받은 한국외대 등도 여진(餘震)에 시달리고 있다.


학교별 사안은 다르지만 △이사회 지배구조 △학생 소통 △교수 설득 문제가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학 지원사업, 제2캠퍼스, 학사 구조조정 같은 문제는 오히려 지엽적이다. 사태의 계기나 발화점이 되는 건 맞다. 그러나 외피를 한 꺼풀 벗기면 본질은 ‘이·학·교’(이사회·학생·교수)로 수렴된다.” 대학 관계자들의 공통된 말이다.

최근까지 동국대 교수협의회장을 지낸 한만수 교수는 “대학 문제의 근간에 이사회가 있다. 학교 구성원이 정작 결정권을 가진 이사회에선 합당한 몫을 배분받지 못한 탓에 (이사회가) 비합리적 결정을 내려도 견제할 방법이 없다”면서 “결국 거버넌스의 문제”라고 짚었다.

실제로 서강대는 이사진 12명 중 6명이 예수회 신부, 동국대의 경우 이사진 13명 중 9명이 불교 조계종 승려다. 대학 이사회 중에서도 특히 종교집단의 폐쇄적 의사결정이 고스란히 투영된 구조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재정구조 문제가 더해졌다. 앞서 기독교 법인의 각 교단 파견이사 비중을 줄여 논란이 됐던 연세대의 한 교수는 “법인 전입금 같은 재단 의무는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대학 운영에 문외한인 종교집단이 권리만 지나치게 주장한다는 견해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학생과 소통하고 교수들을 설득하는 문제가 총장 리더십의 시험대가 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윤리적 차원의 명분을 넘어 대학 운영의 실질적 비용이나 리스크 관리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강석 중앙대 교수협의회장은 “사업·정책 추진 못지않게 학내 구성원 합의가 중요해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학 운영에 엄청난 차질이 생긴다는 게 입증되지 않았느냐”면서 “총장이 재단 입장에 치우쳐 구성원 의견을 도외시하면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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