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한국 기업들에 '차이나 리스크'는 현재진행형

입력 2016-10-12 17:55
중국경제 경착륙 우려 사라졌지만 기술개발·M&A로 한국기업 위협

김동윤 < 베이징 특파원 oasis93@hankyung.com >


2014년 초 중국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차이나 리스크’란 말이 유행했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 국제 금융시장, 나아가 세계 경제 전체에 ‘재앙’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두려움이 투영된 말이었다. 작년 여름과 올초 두 차례에 걸쳐 상하이증시 폭락과 위안화 급락 사태가 발생하자 “다음 세계 경제 위기의 진앙지는 중국이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그런 중국 경제가 올 들어 9개월여가 지나도록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가격의 이상급등세가 다소 걱정스럽긴 하지만 9월 들어선 각종 실물경기 지표가 눈에 띄게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다. 독일을 대표하는 도이치뱅크의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지자 한 중국 언론은 “세계 경제의 ‘약한 고리’는 중국이 아니라 유럽”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경합하는 한국 기업 입장에서 차이나 리스크는 중의적인 뜻을 내포한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뿐 아니라 중국 기업들의 급부상도 한국 기업에는 리스크다. 최근 들어 첨단산업마저 중국 기업이 한국 기업을 넘어섰거나, 최소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진단이 중국 내에서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발화사건이 처음 발생한 9월 중순께 중국 경제신문 제일재경일보에는 ‘중국 신제조의 역습: 한국은 중국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란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서울발 기사가 실렸다.

이 신문은 “삼성전자가 삼성SDI에서 공급받던 배터리를 중국 기업 ATL 제품으로 교체한 것은 중국의 배터리 제조 기술이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한국은 글로벌 기업의 ‘무덤’으로 불리는 곳이지만 다수의 중국 제품이 한국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표적인 예로 샤오미의 휴대용 스마트폰 충전기를 들었다.

‘충전기 좀 잘 팔린다고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단순한 오버로 치부할 건 아닌 듯하다.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들은 신차를 개발할 때 LG화학이나 삼성SDI에서 제조한 배터리를 쓰지 않고 중국 업체가 생산한 제품을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LG화학과 삼성SDI가 중국의 ‘전기차 모범규준’ 인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이들 두 회사의 배터리를 사용하면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중국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책적 불확실성도 있지만 중국 업체가 생산한 배터리 품질이 한국 제품과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선 것도 주된 이유”라고 귀띔했다. 그는 “예전처럼 한국산 배터리를 반드시 써야 한다는 절박함이 이┫?없어졌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는 해당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 잇달아 중국 기업 손에 들어가고 있다. 세계 최대 종묘·농약업체인 스위스의 신젠타는 중국 국유기업 켐차이나가 인수했고, 필립스 LED사업부는 중국 난창공업이 사들였다. 철강·해운·조선 등 이른바 전통 제조업 부문에서 이뤄지는 합병을 통한 대형화도 한국 기업들엔 위협적이다. 일련의 과정이 일단락되면 중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한층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한국 기업들에 차이나 리스크는 진행형이다.

김동윤 < 베이징 특파원 oasis93@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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