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용석 기자 ]
SK그룹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12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연례 ‘CEO(최고경영자) 세미나’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 세미나에는 최태원 회장과 핵심 계열사 CEO 등 그룹 수뇌부 40여명이 총출동한다. 내년 경영 전략을 짜기 위해서다. CEO들은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이 지난 6월 말 확대경영회의에서 던진 ‘숙제’를 풀어야 한다. SK CEO들은 ‘글로벌’과 ‘성장’에서 답을 찾고 있다.
“변하지 않으면 돌연사할 수 있다”
확대 경영회의 당시 최 회장은 유례 없이 강한 어조로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변하지 않는 기업은 서든 데스(sudden death·돌연사)할 수 있다” “뿌리부터 바뀌지 않으면 끝장” “대부분 계열사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경영 지표가 심각한 수준” 등 직설적인 화법을 동원해 CEO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최 회장은 구체적으로 돈 버는 방법, 일하는 방법, 그룹의 자산 구성 등 세 가치 측면에서 변화를 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출퇴근 문화, 근무시간, 휴가, 평가·보상, 채용 등이 과연 지금의 변화에 맞는 방식인지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자산을 효율적이고, 유연하게 관리하면 변화 속도에 맞춰 준비할 수 있어 어떤 사업에 어떤 자산을 투입할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력 계열사 대부분이 내수 시장에 갇혀 있거나 매출 정체에 빠져 있다는 게 최 회장을 비롯한 그룹 수뇌부의 진단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게 최 회장의 주문이었다.
강연 형식도 파격적이었다. 최 회장은 딱딱한 회의 형식 대신 넥타이를 풀고 소매를 걷은 모습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18분 안팎의 짧은 시간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TED식 강연이었다.
변신 서두르는 SK
SK CEO들은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그룹의 ‘맏형’을 자처하는 SK이노베이션은 중국 국영 석유기업 시노펙과의 협력 확대 등 글로벌 파트너링(제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상하이 세코 등 중국 석유화학기업 인수합병(M&A)도 추진하고 있다. 결재 제도 폐지, 자율복장제, 2주 휴가 보장 등 일하는 방식도 확 바꿨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부회장도 최근 임직원 대상 강연에서 “SK이노베이션은 FT 글로벌 500(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500대 기업)에도 못 들어간다”며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혁신을 주문했다. 현재 15조원 안팎인 기업가치를 30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T맵(지도 서비스)을 무료 개방하며 플랫폼 사업에 나서는 한편 서울대와 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해외 사업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조직 문화 측면에서도 5단계(부장-차장-과장-대리-사원)인 직원 직급 체계를 2단계(팀장-팀원)로 변경하기로 했다. 수직적 조직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D램, 낸드플래시) 일변도에서 벗어나 비메모리 반도체(이미지센서 등) 사업에 나선다. 지난 7월부터는 생산직에 성과급여제를 도입했다.
지주사인 SK(주)는 인공지능, 바이오 등 신사업 발굴과 함께 자율근무제, 자율복장제를 도입한다. SK네트웍스는 동양매직을 인수한 데 이어 패션 부문 매각을 타진하고 있다.
SK CEO들은 이번 세미나에서 ‘글로벌’과 ‘성장’을 화두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전략을 도출할 예정이다. 최근 2년간 ‘위기 극복’과 ‘위기 돌파’를 경영 화두로 내세웠지만 최 회장의 경영 복귀 등으로 비상 상황은 어느 정도 일단락된 만큼 이제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과 성장을 모색할 시점이라는 판단에서다.
관건은 과연 ‘파괴적 혁신’이라고 부를 만한 해법이 어느 정도 나올지다. SK 내부에선 기존에 하던 사업이나 직급 체계 변화만 나열해선 최 회장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 글로벌 파트너링
SK의 대표적 성장 전략. SK가 해외 주요 기업과 제휴해 기술, 자원, 마케팅 협력 등의 방식으로 함께 성장하는 윈윈 전략이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이 중국 석유기업 시노펙과 합작해 설립한 중한석화가 대표적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