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입시가 바꾼 '법조 명문'…10년후 '외고 검사장' 판 될듯

입력 2016-10-11 18:50
수정 2016-10-12 14:14
대한민국 검사이야기 (2) 검사들의 출신 고교

현직 검사 2056명 출신고
대원외고 65명으로 1위 달려
한영외고 30명, 명덕외고 27명

검사장급 이상 간부 47명 중
경기고-서울대 'KS라인' 1명

상고·공고 출신도 여럿


[ 김인선 기자 ] 대검찰청 소속 A검사장은 당분간 지역 고교 동문회에는 발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최근 겪은 황당한 일 때문이다. A검사장 모교인 D고는 영남권에서 수십여명의 법조인을 배출해낸 법조 명문이다. “일면식도 없는 고교 선배란 사람이 제 이름을 팔며 서초동에서 호객 행위를 하고 다니더라고요. 법조 브로커인 거죠.” A검사장은 몸서리를 쳤다. 김형준 부장검사와 스폰서였던 중·고교 동문 김모씨, 홍만표 전 검사장과 고교 후배인 브로커 이민희…. 잘나가던 두 검사들이 고교 동문과의 ‘잘못된 만남’으로 구속된 게 최근 일이다.

학연과 지연이 통하는 대한민국에서 ‘고교 동문’은 꽤나 튼튼한 동아줄이다. 법조계 그것도 ‘검사동일체 원칙’(전국의 검사가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몸처럼 움직인다)이 지배하는 검찰 조직에선 더더욱 그렇? 사법시험으로 법조인 300명을 뽑은 1980년대, ‘KS라인’(경기고-서울대 출신)이 그 절반을 차지하던 때가 있었다. 정보 관련 부서 검사가 온종일 품 팔아 가까스로 모은 정보를 KS 출신들은 정·관·재계에 퍼져 있는 ‘동문표 핫라인’을 이용해 3시간 만에 취합했다는 일화는 당시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도 이제 옛날 얘기다. KS라인 자체가 구시대 유물이 됐기 때문이다. 현직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 47명 중 KS 라인은 유상범 창원지검장 단 한 명뿐이다. 현재 재직 중인 검사 2056명 중 경기고 출신은 24명뿐으로 고교별 랭킹 6위다. 경기고는 대원외국어고(65명), 순천고(32명), 한영외국어고(30명), 검정고시(29명), 명덕외국어고(27명)에 앞자리를 양보했다. “고교 입시제도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죠.” 경기고 하락세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유 지검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검사장은 검찰의 꽃이다. 날고 기는 동기 검사들 중에서도 상위 10% 안에 들어야만 달 수 있다.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는 어딜까. 김현웅 법무부 장관 모교인 광주제일고와 박성재 서울고검장이 나온 대구고가 각각 3명으로 1위를 기록했다. 경북고 대동고 청주 신흥고 여의도고 영동고 충남고 등에서는 2명씩 나왔다. 김회재 광주지검장은 순천고 출신 첫 검사장이다. “광주제일고, 대구고 등 영호남 명문고 출신들은 서울 깍쟁이들보다 자주 뭉친다”는 게 법조계의 얘기다.

한때 검찰 조직을 주름잡았던 지역 명문고들은 이제 뉘엿뉘엿 지고 있다. 본지가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협조를 받아 1994~1996년, 2004~2006년, 2014~2016년에 임관된 신임 검사 940명의 출신 고교를 분석한 결과가 그렇다.

1994~1996년까지 3년간 검사 5명 이상을 배출한 학교는 대구 성광고(6명), 서울고(5명), 영동고(5명), 전주고(5명)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울 수도권과 영호남의 명문고가 체면치레를 하고 있었다.

2000년대엔 우수 인재가 몰렸던 특수목적고 출신들이 무섭게 치고 올랐다. 대원외고가 그 선두에 섰다. 2004~2006년 3년간 검사 5명을 배출한 학교는 대원외고(9명), 순천고(8명), 한영외고(6명), 상문고(5명), 영동고(5명), 진주 동명고(5명), 창원고(5명)로 나타났다. “명문 터줏대감들이 하던 역할을 외고가 하기 시작한 거죠.” 1974년 도입된 고교평준화가 바꾼 변화상을 법조계 인사는 이렇게 평했다. 순천고, 안동고, 안양고의 약진도 고교평준화를 가장 늦게 받아들인 결과다.

외고 출신들은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에 있는 서울고, 상문고, 단대부고 등과 쌍으로 묶어 ‘금수저’ 프레임에 가두는 것에 대해선 불만이다. “1980년대 중후반만해도 저 같은 ‘흙수저’가 사교육 없이 학교 수업만 열심히 들어 외고,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외고 출신 1호 검사인 김윤상 전 법무부 상사법무과장의 말이다.

앞으로 외고 출신 검사장이 줄줄이 나올 전망이다. ‘법조 명문고’ 순위가 동문회 모습도 바꿀 전망이다. 왕년에 ‘법조인 사관학교’였던 서울 K고 출신 법조인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 고교 법조인 모임에 가보면 젊은 후배들은 없고 다들 나이 지긋한 50~60대다. 지난번에 모처럼 초임 검사 후배가 들어왔다. 그래서 불렀더니 ?친구가 지나친 관심 때문인지 오기를 꺼리더라.”

상업고 공업고 출신 검사도 여럿 있다. 양부남 광주고검 차장검사는 담양공고, 김회종 창원지검 진주지청장은 진주기계공고를 나왔다. 조재연 남부지검 차장검사도 부산기계공고 출신이다. 이정현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은 나주 영산포상고를 나왔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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