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상장·공모 개편안'
성장성 있으면 증시 입성…혁신기업 자금조달도 쉽게
주가가 공모가 밑돌면 90%로 되사줘 투자자 보호
[ 안상미/이유정/나수지 기자 ]
적자를 내고 있더라도 독창적인 사업모델, 아이디어로 성장성을 인정받으면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길이 열린다. 기술력만으로 나스닥에 상장해 급성장한 미국의 테슬라나 페이스북처럼 국내 혁신기업들도 사업 확장에 필요한 투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역동적인 자본시장 구축을 위한 상장 공모제도 개편 방안’을 5일 발표했다. 금융위는 기업공개(IPO) 절차에서 상장 주관사인 증권사가 자율적으로 수요예측과 공모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부여했다. 증권사의 자율성이 커진 만큼 무분별한 상장·공모로 인한 투자자 피해를 막는 장치도 마련했다.
◆상장 문호 크게 넓힌다
금융당국은 성장성 있는 초기 기업이 코스닥시장 문턱을 쉽게 넘을 수 있도록 일명 ‘테슬라 요건’을 마련했다. 미국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가 자본력은 충분하지 않았지만 2010년 창업한 지 7년 만에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한 사례를 따온 것이다.
우선 ‘성장성 평가 특례 제도’를 신설했다. 현행 코스닥시장에는 복수의 기술평가 기관으로부터 일정 기술등급 이상을 받은 기업에 대한 ‘기술평가 특례상장’만 있다. 앞으로는 기술평가가 어렵더라도 주관사인 증권사가 성장 가능성을 확신해 추천하면 특례상장을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주관사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 3년간 상장을 주선한 기업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거나 상장 폐지되면 1년간 특례상장 추천을 제한할 방침이다.
코스닥시장의 일반상장 요건도 대폭 완화한다. 지금은 상장 신청 전년도에 적자를 낸 기업은 코스닥 상장을 신청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는 12월부터 매출, 이익 등 재무적 상장 요건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적자가 나더라도 ①시가총액 500억원 이상이면서 상장 신청 직전 연도 매출 30억원 이상, 직전 2년 평균 매출 증가율 20% 이상 ②시가총액 500억원 이상이면서 공모 후 주가순자산비율(PBR) 200% 이상 등의 요건 중 하나를 충족하면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자격을 주기로 했다.
IPO 제도도 수요예측, 공모가격 산정 방식 등에서 주관사가 영업전략에 맞춰 차별화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하는 쪽으로 개선한다. 현재는 공모가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해 모든 주관사가 획일적으로 수요예측을 하지만 개인투자자(청약자)에게 환매청구권을 부여하는 경우 주관사 재량에 맡기기로 했다.
◆투자자 별도 보호장치 마련
상장 문턱이 낮아지고 주관 증권사의 재량이 커진 만큼 일반 투자자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별도 보호장치가 마련된다. 금융위는 적자 상태에서 특례상장을 하거나 수요예측을 거치지 않고 공모가를 정하는 등 신설된 상장·공모 제도를 통해 증시에 입성하는 기업에 투자한 개인투자자에게 환매청구권(풋백옵션)을 주기로 했다. 환매청구권은 신규 상장 기업의 주가가 공모가 대비 90% 미만으로 떨어졌을 때 개인투자자가 주관 증권사에 ‘공모가 대비 90% 가격에 주식을 되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환매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증권사가 기업을 상장하는 데 얼마나 많은 자율성을 누렸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매출·이익 요건에 구애받지 않고 증권사 추천만으로 기업을 상장하는 특례상장으로 상장한 기업에 투자하면 환매청구권 행사 기간이 6개월로 가장 길다. 매출은 늘어나고 있지만 이익이 없는 상태에서 일반상장한 기업은 환매청구권 행사기간이 3개월로 줄어든다.
주관사가 수요예측 없이 공모가격을 정하면 행사기간은 1개월이다. 현재 공모가 산정을 위해 의무적으로 거치도록 돼 있는 수요예측을 배제하고 증권사와 상장회사가 합의한 가격대로 공모가를 정하는 ‘단일가격’ 방식을 활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안상미/이유정/나수지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