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뚫린 무역보험] 무신용장 악용한 '제2 모뉴엘' 사기극…무역보험·은행 눈뜨고 당했다

입력 2016-10-04 18:14
온코퍼레이션, 무역보험 대출사기 전말

한국법인이 보증받고 미국 법인이 수출대금 회수
미국 법인, 은행 대출금 안갚고 1500억원 빼돌려
모뉴엘 가담자가 기획…무역보험 허점 또 드러나


[ 김순신 / 오형주 기자 ] 온코퍼레이션의 수출보험 대출사기는 중소기업에 무신용장 수출 거래를 인정한 보증제도의 허점과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의 늑장 대처가 결합돼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뉴엘 사기 대출에 관여한 무보 출신 직원들이 온코퍼레이션과 짜고 수출보험 보증 제도를 악용해 무보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무보는 이 같은 사실을 제보받고도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관리 부실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무신용장 거래의 덫에 빠져

온코퍼레이션은 은행 대출한도를 늘리기 위해 무보의 단기수출보험(EFF)을 적극 활용했다. EFF는 수출기업이 계약에 따라 물품을 선적한 뒤 선적서류를 근거로 수출채권을 은행에 매각할 때 무보가 보증하는 보험이다. 기업은 수출대금이 들어오기 전에 은행에 수출채권을 매각해 먼저 대금을 지급받는다. 이 과정에서 은행이 수입업자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수출보험이나 수출보증이다. 수출채권만으로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신용장 없이도 무역 보증이 가능한 구조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EFF의 바탕이 되는 오픈어카운트(OA) 거래는 수출업자가 원본 BL(탁송화물증권)을 수입업자에게 보내고 은행에는 사본만 제시해 양도대금을 받아가는, 그야말로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본래 대기업만 이용했다”며 “이명박 정부 때 무역 1조달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보가 OA를 중소기업까지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온코퍼레이션이 지난달 말 공시한 EFF 대출 한도는 1억4337만달러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신용장 없이 나간 대출은 신용대출 성격이 강하다”며 “한국 법인이 파산하면 은행들은 무보에 대출금을 물어줄 것을 요청할 수 있지만, 무보는 구상권을 행사할 상대방이 없다”고 말했다.

◆소송전 펼쳐 보증 만기 늘려

모뉴엘 사기 대출에 연루된 정모 전 무보 영업총괄부장과 황모 전 부장은 온코퍼레이션 미국 법인에서 사업부문 본부장 등을 맡으며 이번 사건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모뉴엘 사건 이후 무보가 수출 보증 한도를 줄이자 무보를 상대로 다섯 건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소송이 제기된 대출은 상환이 유예된다는 점을 악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송을 통해 시간을 끌고 다른 거래로 보증을 받으며 늘어난 수출 대금은 온코퍼레이션 미국 법인에 쌓였다.

이들은 미국 법인과 한국 법인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미국 법인의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미국 에 또 다른 별도 법인을 설립하고 이 법인이 미국 법인의 증자에 100% 참여해 한국 법인의 지분율을 낮추는 방식이다. 온코퍼레이션 관계자는 “모뉴엘 사건 직후 미국으로 떠난 온코퍼레이션의 이모 사장이 모뉴엘 사건 연루자를 모아 미국 법인에 고용했다”며 “정 전 부장은 무보의 보증 심사팀장을 지냈기 때문에 이 사장과 친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부실한 무역보증 관리 시스템

무보의 보증 관리 시스템이 허술한 것도 이번 사건을 키운 요인이란 지적이다. 무보는 모뉴엘 사건 직후 온코퍼레이션을 전담하는 특별팀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온코퍼레이션의 수출에 비정상 거래가 있는 정황을 파악했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넘어갔다.

또 무보는 온코퍼레이션 관련 제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제보자들은 “한국 법인이 미국 법인의 비위 사실을 알게 된 지난 6월부터 무보에 여러차례 제보했다”며 “미국 법인이 자산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가압류 신청 등을 요청했으나, 무보는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미국 법인에 실효적 조치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보는 온코퍼레이션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순신/오형주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