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전력시장 독점구조부터 허물어야

입력 2016-10-04 18:06
전력시장 경쟁체제 도입될까

'냉방 요금폭탄'에 누진제 개편…또 하나의 '정치요금'일 뿐
송배전망 등 한전 독점에 의한 '전기권력' 깨는 구조개혁 시급
시장에서 경쟁토록 해야 소비패턴에 따른 요금제도도 가능

비정상적 요금체계를 바로잡는 일과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완결은 불가분의 관계다
시장이 먼저 정상화돼야 요금도 정상화될 게 아닌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박사


더불어민주당이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내놨다. 기존 6단계 누진단계를 3단계로 축소하고, 누진율도 낮춘다는 게 골자다. 지난여름 폭염으로 인한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거센 비판 여론에 국민의당에 이어 제1야당까지 답을 내놨다. 이제 남은 건 정부 여당이다. 새누리당, 정부, 한국전력 등이 참여하는 이른바 전기요금 당정 태스크포스(TF)가 오는 11월쯤 개편안을 내놓을 것이란 전언이다. 역시 골자는 누진단계 및 누진율 축소가 될 게 분명하다. 과도한 누진요금이라는 낡은 제도,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요금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나무랄 것도 없다.

하지만 각 당이 경쟁적으로 전기요금을 깎아주겠다고 나서는 것은 또 하나의 비정상임이 분명하다.

일부 전문가는 전기요금이 싼 지금이 누진제를 손볼 적기라고 말한다. 저항이 덜할 것이란 점에서다. 하지만 전기요금 환경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치권에서 어떤 안을 내놔도 ‘땜질식 처방’에 불과할 뿐 이게 끝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그것도 지금처럼 ‘전기요금은 정치요금’이라는 후진적인 가격 결정 메커니즘이 계속되는 한 말이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저마다 싸고,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말하지만 이는 더 이상 가능한 조합이 아닌 쪽으로 가고 있다. 비쌀 수밖에 없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자고 하고, 원전은 불안하다며 더 이상 못 짓게 하고, 화력발전소는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상황인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추세에서 언제까지 정치적 전기요금이 가능하겠나.

전기요금 체계의 비정상을 바로잡기 위해선 원칙에 기반한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그것은 독점사업자인 한전의 선의도, 전기요금을 물가 등 다른 상위 경제목표의 도구로 담는 정부의 정책도, 대중에 영합하는 정치권의 인기전략도 아닌, 오로지 전기공급자의 경쟁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전기요금 체계가 잘못됐다면서 정작 공급자 간 경쟁 문제만 나오면 어찌 된 영문인지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어떤 안을 내놔도 '땜질식 처방'

이번에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내놓은 더민주만 해도 그렇다. 한전의 독점이 문제라고 하면 민영화로 가자는 거냐며 화들짝 말문을 닫아버린다. 아니 외환위기라는 국면 속에서 1999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들고 나온 건 바로 자신들이 집권하던 시절 아니었나. 당시 계획대로만 됐으면 한국의 전력산업은 2009년에 이미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경쟁체제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집권당은 발전노조, 시민단체 등이 반발한다고 물러서고 말았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중간에 하다 만 꼴로 멈춰 서게 된 결정적 이유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이라고 다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당정 TF가 전력요금 근본 해법으로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논의할 조짐은 눈을 씻고 봐도 안 보인다. 새누리당도 민영화라면 질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공기업 개혁을 부르짖 은 이명박 정부 때에는 자원개발 등을 이유로 그나마 나눠놓은 발전사들을 한전에 다시 통합하자는 반동적 움직임까지 출몰했을 정도였다.

정치권이 이 모양이니 모든 게 비정상이다. 한전도, 발전사도, 전기위원회도, 전력거래소도 무엇 하나 정상인 게 없다. 정치권이 민영화를 저토록 반대하는 건 여론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자신들이 쥐고 있는 ‘전기권력’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백번 맞을 것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간사업자 참여 등을 통한 판매경쟁이니, 소비자 선택권이니 하고 떠들지만 진짜 그럴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금과 같은 비정상적 요금체계와 한전의 독점체제 하에서 민간사업자가 참여하기만 하면 확 달라질 거라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정치적으로, 정책적으로 싸게 만든 요금은 민간사업자에게 아무런 유인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좌절감만 극대화될 뿐이다. 더구나 송·배전망 독점 등 압돛?지위에 있는 한전이라는 공기업과 민간사업자가 어떻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겠나.

이래놓고 에너지 신산업 운운하는 게 지금의 정부다. 도대체 에너지 기존 산업의 독점을 그대로 두고 에너지 신산업이 가능하기나 한지. 기존 독점기업이 에너지 신산업을 방해하거나 설사 에너지 신산업 쪽으로 가더라도 독점이 전이될 건 불 보듯 뻔하다. 신규 진입자가 한전을 누르고 성공하기란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는 구조다. 정부가 오히려 담합에 가담하는 꼴이다.

99년도 전력산업 구조개편 무산

그렇다면 독점의 당사자인 한전은 어떤가. 누가 자신들의 독점만 건드리지 않으면 정치요금도 얼마든지 환영한다는 식 같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이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요금 폭등’ 등 온갖 ‘민영화 괴담’이 튀어나오는 진원지로 의심될 정도다. 이쯤되면 국회·정부·한전이 ‘전(電)의 삼각동맹’을 구축했다고 할 만하다. 여기에 소비자단체까지 부화뇌동하는 판국이면 무소불위가 따로 없다.

선진국들은 바보라서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나서고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게 아니다. 일각에서는 선진국에서 전력산업 구조개편 후 전기요금이 되레 올랐다고 하지만 요금이 오를 이유가 충분히 있는데도 오르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원한다면 요금이 비싸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혹자는 전기요금이 통신요금처럼 될 수 없느냐고 말한다. 문제는 소비 패턴 변화에 따른 유연한 요금제, 소비자 선택권에 부응한 다양한 요금제 또한 경쟁이 아니고선 불〈求募?점이다.

해법은 공급자 간 경쟁

끝도 없는 원가 시비만 해도 그렇다. 한전이 정보를 독점하는 한 밖에서는 원가를 제대로 알 수도, 믿을 수도 없는 건 당연하다. 산업용이 싸다느니, 주택용이 비싸다느니 하는 소모적 논쟁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도 공급자 간 제대로 된 경쟁 말고는 다른 해법이 없다.

비정상적 요금체계를 바로잡는 일과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완결은 불가분의 관계다. 일각에선 비정상적 요금체계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교묘하게 회피하려는 꼼수처럼 보인다. 순서로 따지면 오히려 거꾸로가 맞다. 시장이 먼저 정상화돼야 요금도 정상화될 게 아닌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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