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코펜하겐 하늘 아래, 한 잔의 추억

입력 2016-10-03 16:07
수정 2016-10-03 16:09
맥주 마니아의 성지…칼스버그의 고향을 가다

낮에는 양조장 투어
밤엔 수제맥주 펍…덴마크의 하루는 짧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하면 동화 작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먼저 떠오른다. 인어공주뿐이랴. 코펜하겐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맥주 ‘칼스버그’의 고향이자,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수제맥주 ‘미켈러’의 발상지다. 미술애호가 사이에서 전설이 된 ‘루이지애나 미술관’도 있다. 안데르센이 ‘여행은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샘’이라고 했다면 코펜하겐 여행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나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인어공주 이야기가 깃든 도시, 코펜하겐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외레순 해협의 셸란 섬과 아마게르 섬에 걸쳐 있는 운하 도시다. 코펜하겐의 랑겔리니 항구 끝자락 바위 위엔 80㎝의 인어공주 동상이 놓여있다. 안데르센 동화 속 인어공주다. 인어공주 동상은 알려진 명성보다 실제로 보?허무하기 때문에 벨기에의 오줌싸개 동상, 독일의 로렐라이 동상과 더불어 세계 3대 ‘허무 동상’으로 꼽힌다. 크기가 작고 볼품도 없지만 인어공주 동상은 수많은 여행객이 찾는 코펜하겐의 명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안데르센의 발자취를 좇아온 이들의 마음을 끈 것은 동상 자체보다 그 안에 깃든 슬픈 사랑 이야기일 터다.

‘새로운 항구’란 뜻의 뉘하운(Nyhavn)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면 인어공주 동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수로를 따라 늘어선 궁전과 오페라하우스, 도서관 등 아름다운 건축물은 덤이다. 뉘하운은 1673년에 개통된 운하로 과거로 회귀한 듯 고풍스러운 정취가 흐른다. 운하 남쪽에는 18세기 건물들이 즐비하고, 북쪽은 창문이 많은 파스텔 빛 건물들이 화사하게 이어진다. 푸른 하늘 아래 노천카페에서 시원한 생맥주를 한잔하기에 뉘하운만큼 낭만적인 장소도 없다. 테이블마다 놓인 맥주는 칼스버그다. 유럽, 아니 세계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칼스버그의 고향이 코페하겐인 까닭이다.

칼스버그 양조장을 찾아서

코펜하겐 곳곳에서 칼스버그를 마실 수 있지만, 칼스버그 양조장에서 마시는 맛은 남다르다. ‘맥주는 양조장 굴뚝 아래서 마실 때 제일 맛있다’는 독일 속담처럼 말이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국철로 약 20분 거리의 ‘칼스버그 역’에 내려 언덕을 오르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양조장이 고개를 내민다. ‘코펜하겐 익스비어런스(The Copenhagen Exbeeerience)’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오래된 양조장 일부를 박물관과 펍으로 개조했다. 그래서 더 운치가 있다. 양조장 입장권엔 맥주 두 잔을 시음도 포함돼 있다. 추가 요금을 내면 가이드가 구석구석 안내하는 양조장 투어도 할 수 있다.

“1847년 칼스버그를 창립한 J C 야콥센은 덴마크산 라거 맥주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고, 독일 뮌헨으로 가서 라거 맥주 양조법을 배웠어요. 귀국해서 연구소를 만들고 과학자들과 협업한 결과 1883년 세계 최초로 라거에서 효모를 가라앉혀서 발효시켜 (하면발효식) 효모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지요. 놀라운 건 맥주 발전을 위해 그 기술을 돈 한 푼 받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유했단 점입니다.”

양조장 투어는 역사 이야기로 시작해서 철학 이야기로 흘러갔다. 눈앞의 이익을 따지기보다 맥주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연구소를 운영하고, 나아가 과학자들을 후원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구소 쪽으로 난 길에는 청동 조각이 늘어선 정원이 있었다. 정원 분수 위에 항구에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동상이 세워져있다. 이 동상이 원형이다. 카를 야콥센은 보다 많은 사람이 인어공주 동상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링겔리니 항구에 양조장에 있는 동상과 똑같은 동상을 세운 것이다.

가이드 투어가 끝나자 사람들은 일제히 양조장 2층의 바로 향했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칼스 스페셜(Carls Special)’을 맛나기 위해서다. 1854년 J C 야콥센이 만든 다크 라거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 맥주로 고소하고 달콤한 풍미가 가득하면서도 목 넘김이 편했다. 부드러운 맥주 거품에 감탄하며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물거품이 돼도 좋다는 인어공주를 위해 덴마크어로 건배를 외쳤다. 스콜!

맥주 덕후들의 성지, 미켈러 바에서 수제맥주를

코펜하겐은 맥주 애호가들에게 완벽한 도시다. 낮엔 칼스버그 양조장에서 신선한 맥주를 맛보고 밤엔 미켈러(Mikeller) 바에서 기발한 수제맥주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미켈러 바는 서울과 방콕에도 있지만 코펜하겐 빅토리아 거리의 바가 본점이다. 여행하는 도시마다 지역 맥주를 맛보는 수제맥주 사냥꾼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기도 하다.

미켈러는 2006년 미켈(Mikkel Borg Bjergsø)과 크리스티안(Kristian Klarup Keller)이 의기투합해 만든 수제맥주다. 자신의 집과 학교 부엌에서 양조를 하던 미켈이 고등학교 과학 교사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새로운 맥주 개발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15년 전 세계 맥주 오타쿠들이 맛을 평가하는 사이트 ‘레이트 비어(ratebeer.com)’에서 올해의 주목할 만한 양조장으로 선정될 만큼 성장했다.

미켈러 러닝 클럽이라는 독특한 음주 문화도 전파했다. 건강하게 오래 맥주를 즐기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같은 티셔츠를 입고 달리는 모임이다. 달리고 난 후엔 함께 미켈러를 마신다. 땀 흘려 뛰고 난 후 시원하게 쭉 들이키는 맥주맛이라니 상상만으로도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해질녘 도착한 미켈러 바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잔을 기岾甄?이들로 붐볐다. 천천히 음미하듯 맥주를 홀짝이는 사람들 사이로 자유로운 공기가 감돌았다. 첫 잔은 일명 ‘하우스 맥주’라 불리는 베스트브로(Vestbro) 중 ‘스폰탄(Spontan)’을 택했다. 베스트브로는 수제맥주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마시기 편한 맥주 네 가지 필스너·밀맥주·브라운 에일·스폰탄을 말한다. 그중 스폰탄은 야생효모로 발효시킨 후 오크통에서 숙성시켜 시큼한 맛이 특징이다. 다음 잔은 글루텐(Gluten)을 제거한 크림 에일(Cream ale)이냐, 검고 진한 흑맥주 포터(Poter)냐를 놓고 잠시 갈등했다. 고민 끝에 둘 다 맛보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맥주잔이 쌓이고 코펜하겐의 밤은 검은 맥주처럼 어둠에 젖었다.

예술과 자연이 하나 되는 루이지애나 미술관

코펜하겐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루이지애나(Louisiana) 미술관으로 잡았다. 코펜하겐 북쪽의 작은 마을 훔레백 기차역에서 내리니 ‘루이지애나를 향해 걸어라’라는 지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일렬로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 행렬만 따라가면 루이지애나 미술관이 나온다. 외레순드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미술과 자연이 완벽하게 공존하는 곳이다. 특히 자연을 배경으로 전시된 호안 미로, 막스 에른스트, 헨리 무어 등 유명 조각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맛이 빼어나다.

미술관은 본관에서 세 개의 분관이 연결되며, 건물이 자연의 일부분처럼 느껴지는 구조였다. ‘점입가경’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구나 싶을 정도로 갈수록 멋진 풍광이 시선을 끌었다. 밀려오는 감동을 표현할 감탄사가 부족해 아쉬울 따름이었다. 야외 정원에선 나도 모르게 생각을 멈추고 오롯이 자연과 작품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예술과 자연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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