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
[ 양병훈 기자 ]
“저 왜땅 관동지진 난리 속 / 조선 동포 살육당한 / 그 처처참참한 몇십만 신위 각위 / 저 제주 4·3 원혼 십만 각위 / 저 지리산 한령 수만 신위 / 저 낙동강 다부원 혈투의 영령 각위 / (중략) / 남녘 바다 세월호 / 꽃 같은 내 딸 / 잎 같은 내 남편 / (중략) / 아직도 저승에 못 가신 채 이승의 허공 떠도는 무주고혼 보체 / 그 얼마나 노여우랴”(‘초혼(招魂)’ 부분)
고은 시인(83)이 3년 만에 새 시집 《초혼(창비)》을 냈다. 63쪽에 이르는 장편시 ‘초혼’과 함께 지난 3년간 쓴 비교적 짧은 시 102편을 묶었다. 초혼에서 고 시인은 갑오농민전쟁부터 6·25전쟁, 광주민주화항쟁 등을 거쳐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혼령을 불러낸다. 시는 이들을 위무(慰撫·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램)하기 위해 굿을 치르는 무당의 사설 형식이다.
고 시인은 이 시에서 치유의 언어로 죽은 이들의 뜬 눈을 감겨주려 한다. “어허 이 사바세계 아 동방 고려반도 / 억세고 억센 원한 산이 되고 물이 되더니 / 이제부터 다 풀려서 신천지 태평 형통 / 하얀 숨결 드나들고 푸른 피 도는구나”
그는 “이 땅에 대한 제례 없이는 우리의 존재 의미가 없다”며 “그들이 피 흘리기 전, 죽기 전 삶으로 돌아가서 있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 시인은 이번 시집에 실린 다른 시 102편에서 불교의 선(禪)사상, 인류의 평화와 행복 등 철학적인 주제를 다수 다뤘다. 시를 쓰는 행위에 대한 성찰도 빈번하다.
“시에는 / 새것 말고 / 진부한 것 / 함께 있어야 한다 // 지금의 시에는 / 그것이 없다 / (중략) / 인류에게 / 짐승의 흔적이 없다니 원”(‘원숭이 앞에서’ 부분)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절절한 문제의식 없이 시를 쓰는 세태를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치열하다. 나이가 들면 안식과 평화를 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시의 언어로 여전히 부조리에 맞서 싸우고 있다.
“늦었다 / 벼랑으로 솟구쳐 / 저놈의 비바람 속에 서야겠다 / 저놈의 눈보라 속 두 다리 부들부들 떨리는 썩은 분노로 / 기어이 기어이 달려가야겠다”(‘만년’ 부분) 고 시인은 “특수성은 늘 보편성을 갈망하고, 보편성은 늘 특수성을 흡인한다”며 “세계가 하나의 큰 기류, 에너지로 순환하고 있고 내 시도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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