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장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 카프카가 그린 인간 소외, 여전히 '변신'이 두려운 현대인

입력 2016-09-29 19:04
이정수 < 서대문이진아도서관장 >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첫 문장이다. 대학생 시절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 문장을 시작으로 카프카의 언어에 빠져들었다. 1915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한 영업사원이 벌레로 변신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인간 실존과 절대 고독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부모가 진 빚을 갚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살아가던 영업사원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가 돼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서도 출근을 염려하고 있다. 가족과 그가 일하는 상점 지배인은 그의 출근을 채근한다. 그런 그들을 향해 그레고르 잠자는 말을 하지만 이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다. 가족은 방문을 열고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를 발견하지만 아버지는 지팡이와 신문을 마구 흔들어 그를 제 방으로 다시 몰아넣는다.

그레고르 잠자는 방 안에 고립돼서도 자신보다 가족을 염려하고, 가족이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이바지한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 이런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상황이 끔찍한 결말을 맺게 될까봐 불안해한다. 이런 그와 달리 가족들은 이미 그의 존재를 부정하며 자신들이 살길을 모색하기에 이르고, 결국 그레고르 잠자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깊숙이 박힌 채 죽어간다.

이 작품이 출간된 시기는 대공황과 전쟁으로 사람들이 생존의 절박함을 경험하던 시대였다. 먹고사는 문제로 인간 삶의 본질이 훼손됐고,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음으로써 사람들은 존재론적 불안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카프카는 자아 정체성을 잃고 죽어간 그레고르 잠자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투영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전하는 또 다른 메시지는 인간 소외 문제다. 사장과 지배인에게 비인격적 대우를 받지만 가족을 위해 고된 직장생활을 견뎌온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가 돼서도 열차시간에 늦어 직장에서 쫓겨날 것을 걱정한다. 또 그가 가장 역할을 할 때는 가족에게 존재감이 부각됐지만 벌레로 변신한 뒤에는 단지 한 마리의 벌레에 불과한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소통의 부재와 인간 소외, 가족 관계의 단절, 개인의 정체성 위기는 이 책이 발간된 당시 상황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변신’의 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벌레가 돼서야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벌레가 되고 싶은 ‘그레고르 잠자’는 아닐까. (프란츠 카프카 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이재황 옮김, 문학동네, 137쪽, 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