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일 대표(연세대 교수) 인터뷰
특허 취득 등 시행착오 줄여
'마이크로니들' 상용화 탄력
체내에 녹는 재질로 피부 침투
채혈할 때나 미용패치 등에 활용
[ 이우상 기자 ]
정형일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생분해성 마이크로니들 전문가다. 마이크로니들이란 굵기가 300㎛(마이크로미터·1㎛=100만분의 1m)에 길이가 300~800㎛인 작은 바늘로, 찔렸을 때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마이크로니들을 체내에서 녹는 재질로 만든 뒤 그 속에 약품이나 화학물질을 넣어 통증 없이 투여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마이크로니들이 빼곡하게 꼽힌 패치를 피부에 붙이면 바늘 속에 든 약품이 체내로 스며드는 식이다. 매일 수차례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당뇨 환자에게는 주사바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줄 ‘꿈의 주사바늘’로 꼽히기도 한다.
마이크로니들 상용화는 요원하다. 투약의 기본 중 기본인 정량 투여가 어렵고, 바늘 내에서 화학물질이 변성되기도 한다. 정 교수는 지난해 10월 주빅을 설립하고 글로벌 제약사도 성공하지 못한 마이크로니들 상용화에 도전 揚?던졌다.
▷사업화에 직접 도전한 계기가 있습니까.
“해당 기술을 끝까지 책임지고 사업화해보고 싶은 마음에 사업화에 도전했습니다. 직접 사업화하는 대신 다른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것은 꼭 오랫동안 보살핀 아이를 떠나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기술 이전 이후에도 협업을 통해 관여할 수 있지만 직접 사업화하는 것에는 비교할 수 없겠지요. 다른 업체는 갖지 못한 마이크로니들에 관한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이 생겨 사업화에 나섰습니다.”
▷독자적인 기술이란 어떤 것인가요.
“통상적인 주사기는 투여하기 직전 적정 환경에서 보관되던 약물을 빨아들여 주사기에 담고 체내에 투여하는 방식입니다. 마이크로니들은 바늘 자체에 약물이 들어간 상태로 제품이 만들어집니다. 이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약효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가도 약품이 안정되도록 하는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먼저 주름개선물질을 마이크로니들에 넣고 마이크로니들을 패치에 붙인 형태의 기능성 화장품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계획입니다. 평범한 화장품은 피부 각질층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해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마이크로니들이 각질층 아래까지 뚫고 들어가면 화장품의 효과를 피부에 제대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화장품은 신약보다 임상시험 절차가 간단하다 보니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실험실 수준뿐 아니라 파일럿 플랜트 스케일에서 고품질로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실험실에서 개발된 많은 기술이 이 단계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실험실에서는 만들어지지만 생산 규모가 조금만 더 커지거나 제조환경이 잘 제어되지 않으면 생산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내년 여름까지는 대량생산시설을 갖추고 생산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사업화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연구에 매진하고 교육에 힘써야 하는 교수가 왜 사업에 뛰어드느냐는 우려의 시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수가 사업에 도전하는 것이 결코 연구와 동떨어진 일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사이언티픽 리포트’ ‘바이오머티리얼즈’ 등 저명한 학술지에 사업화 도중 연구한 결과가 논문으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기술사업화 경험이 많은 UTA 기술사업화전문가단의 조언이 유효했습니다. 사업화에 이르기까지 부족한 부분을 조언에 따라 추가로 연구하다 보니 논문에 실을 만한 연구결과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직접 사업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쓸 수 없는 논문이었겠지요. 국내에 있는 박사 중 70~80%가 관성처럼 대학에 남아있습니다. 대학에 있는 연구자가 연구뿐만 아니라 사업에도 뛰어들고 본보기를 보여줘야 후학들도 도전의식을 갖고 다른 일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사업화에 도전하는 데 한몫했습니다. 연세대에서도 이런 점을 인정해 올해 처음 제정한 ‘연세 창업대상’을 저에게 준 게 아닐까 합니다.”
▷전문가단에서 어떤 도움을 받았습니까.
“마이크로니들 제작 원천기술은 미래창조과학부 신산업창조프로젝트에 선정됐으며, 이 덕분에 연구와 사업 분야에 경험이 풍부한 김선일 단장으로부터 균형 잡힌 조언을 들었습니다. 또한 기술 사업화에 경험이 많은 변리사로부터 특허에 관한 컨설팅을 많이 받았습니다. 다른 후발업체와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허가 필요한지 ‘특허맵’을 만들어 별도로 연구와 기술개발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연구가 특허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방향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그 덕분에 시행착오를 줄인 것은 물론 불필요한 특허를 취득하는 데 발생하는 비용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할 해외마케팅도 전문가단의 도움을 받을 예정입니다. 주빅은 중소기업이다 보니 전문가단이 보유한 전문화된 프로세스와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됩니다.”
▷다음 제품은 어떤 것인가요.
“임상시험이 비교적 간단한 화장품을 먼저 출시할 예정이지만 향후엔 무통증 주사라는 장점을 살려 매일 수차례 주사를 맞아야 하는 당뇨 환자를 위한 제품을 내놓을 것입니다. 특히 인슐린 등 약물은 화장품과 달리 정량 투여가 중요합니다. 기존 마이크로니들 패치는 피부 탄력 때문에 약품의 40%도 채 안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총으로 총알을 발사하듯 마이크로니들을 밀어내 피부에 제대로 침투하고 약효가 발휘되도록 하는 독점적인 기술을 보유 중입니다. 마이크로니들로 정량 투여할 수 있는 세계 유일한 기술을 갖고 있는 셈이지요. 주빅은 주름개선 화장품을 내놓는 것을 필두로 당뇨 환자를 위한 무통증 인슐린 패치, 주사 맞기를 싫어하는 어린이를 위한 백신제품 등을 차례로 개발해 내놓을 것입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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