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엔 수제맥주 만들고…징검다리 연휴 땐 유럽으로…
미혼 아닌 비혼족의 화려한 인생
"돈 모아라" 잔소리하던 친구들
결혼 후엔 여행갈 때마다 부러워해
거실을 'Bar'로 꾸며 파티 즐기고
연애 귀찮을땐 드라마 보며 대리만족
"짧은 인생, 취미 즐기기에도 모자라"
3년마다 근무지 바뀌는 외교관들
"결혼해도 같이 살기 어려워 포기"
[ 이수빈 기자 ] 7.7%. 20~44세 미혼 여성 중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5 출산력 조사’)이다. 직장 내 솔로 여성이 늘고 있다. 이른바 ‘골드미스’다. 여성에게 어느새 직업은 필수가 됐지만 결혼은 선택사항이다. 그것도 별로 선호하지 않는 선택지다. 스스로 솔로를 택한 비혼족도 많지만 일에 치여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 미혼 여성 직장인의 회사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결혼 대신 ‘덕질’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30대 중반의 강모씨는 ‘프로 여행꾼’으로 불린다. 휴가, 연휴 등만 아니라 일반 주말에도 이틀만 시간이 나면 인천공항을 찾는다.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짧게 갈 수 있는 홍콩, 일본, 중국은 10여차례 이상 다녀왔다. 유럽 동남아 남미 등도 여러 차례 여행했다. 이러다보니 제법 높은 연봉은 대부분 여행비로 쓴다. 강씨는 “그렇게 여행 다녀 결혼자금은 언제 모으냐던 친구들이 결혼 후 오히려 나를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경험을 토대로 여행 관련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씨는 취미가 ‘술’이다. 요즘 수제맥주에 빠져 수업까지 찾아 듣고 있다. 집 거실을 아예 바처럼 꾸며 지인을 초대해 함께 마시는 걸 즐겨한다. 혼자서 홀짝홀짝 마실 때도 많다. 친구들과 지역 막걸리 탐방여행을 가기 위한 계까지 들고 있다. “술자리가 ‘제 인생의 낙’입니다. 이런 취미를 함께 나눌 남자가 있다면 결혼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아직 제 취미생활에 몰두하는 게 더 좋네요.”
남자친구 대신 드라마 남자주인공에 빠진 이들도 있다. 야근 특근을 밥먹듯 하다보니 데이트할 시간은 없지만 드라마는 원할 때 볼 수 있어서다. 시간이 나는 주말이면 국내 드라마부터 미드(미국 드라마), 일드(일본 드라마), 최근엔 중드(중국 드라마)까지 찾아본다. 건설사에 다니는 윤모 대리는 “박보검, 조정석 같이 잘생긴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TV를 보며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공연기획사에 근무하는 이모씨는 자타공인 ‘조카 바보’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부터 인스타그램까지 두 살짜리 조카 사진으로 도배했다. 해외출장을 갈 때면 아직은 입히지도 못할 아이 옷, 신발, 장난감을 사나르기 바쁘다. 하지만 결혼해 내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보는 건 너무 예쁘지만 제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어요. 부모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쩔 수 없는 솔로 택한 여성들
‘비(非)자발적 솔로’가 된 여성도 많다. 외교부엔 골드미스가 넘친다. 이동이 잦은 외교관의 업무 특성 때문이다. 해외 근무가 많고, 그것도 3년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번갈아 옮겨다녀야 한다. 남편이 함께 살기가 불가능한 셈이다. 외교부의 김모 사무관은 “직업 특성상 남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며 “결혼해도 같이 살기 어렵다 보니 아예 혼자 사는 걸 택하는 여성 외교관이 꽤 된다”고 했다. 결혼한 여성은 본부 근무나 중국 일본 파견을 원한다. 왕래하기에 낫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국 일본 근무를 놓고 여성끼리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글로벌 회사에 다니는 40대 중반 최 상무는 지난해 승진한 뒤 선이 뚝 끊겼다. 그나마 부장일 땐 가끔씩 소개팅, 선 등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없다. 잘나가는 대기업 상무다 보니 상대편에서 만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소개해주려던 쪽도 여자가 너무 잘나가 부담스럽다는 눈치다. “임원 승진할 줄 알았으면 작년에 좀 더 열심히 선이라도 나가볼 걸 그랬어요.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회사 생활에 목숨걸어야 하나요?”
디자인 회사에 다니던 노모씨는 올해 초 창업했다.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나이에 부모님은 “시집부터 가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불안정한 사업을 시작하면 결혼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하지만 노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을 미루기에는 짧은 인생”이라는 그는 오히려 사업을 시작한 뒤 만나는 남자 폭이 넓어졌다고 했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차리고 보니 이래저래 만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인연 찾기를 생각하더라도 좋은 선택을 한 것 같은데요.”
남자친구가 있어도·없어도 문제
미혼 여성은 주변에서 연애나 결혼문제를 캐묻는 게 부담스럽다. 최근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한 박모씨도 새로운 회사에선 3년 넘게 사귀어온 남자친구의 존재를 숨기기로 했다. 이전 회사에서 ‘나이도 다 됐는데 언제 결혼하냐’ ‘그렇게 사귀고 결혼도 안 하면 둘 다 어떻게 되는 거냐’ ‘혹시 헤어진 거 아니냐’는 등 과도한 관심을 받느라 지쳐서다. 박씨는 이직한 뒤 ‘남자친구가 있느냐’는 동료 질문에 “특별히 없다”며 적당히 회피했지만 금세 그조차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아직도 남자친구가 없어서 어떻게 하느냐’ ‘아는 사람을 한번 만나보겠느냐’는 또 다른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다. 박씨는 “모두 왜 그렇게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어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자회사에 근무하는 정모 과장은 요즘 식사 약속에서 ‘소개팅’ 얘기가 나올 때면 정색부터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소개팅을 해주겠다’고 하지만 정작 소개팅이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정말 소개해줄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하기에 은근히 기대했다가 속상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정 과장은 “하나같이 소개팅해주겠다고 하는데 대부분 빈말”이라며 “인사말로 쉽게 하는 말이 내게는 상처가 된다”고 토로했다.
대기업 인사팀에 근무하는 송모 과장에게 옆팀 선배인 김모 부장은 든든한 원군이다. 마흔이 넘고도 주눅 들지 않고 일하는 김 부장을 보면서 마음을 추스를 때가 많다. 씩씩하게 일을 처리하고 주변 사람도 살갑게 대하는 김 부장 덕분에 회사 내 솔로 여성에 대한 시각도 좋아졌다. “김 부장이 앞으로도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하며 많은 골드미스의 롤모델이 돼줬으면 해요. 다만 갑자기 결혼해 좋은 롤모델이 사라지는 게 아닐지 가끔 두렵습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