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기 진입한 골프장] '알짜' 파주·사천CC도 매물로…좀비 골프장 퇴출 빨라진다

입력 2016-09-26 17:33
김영란법 공포에 떠는 한국 골프장

접대골프 된서리에 매출 20% 사라질 판
수도권 명문도 퍼블릭 전환 늘어날 듯
10년 안된 신생 골프장일수록 큰 타격


[ 오상헌 / 이동훈 기자 ] 경기 파주에 있는 파주CC는 국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퍼블릭 골프장으로 꼽힌다. 서울에서 가까운 데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골프 시즌에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풀 부킹’된다. 그 덕분에 파주CC는 매년 사상 최고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해 실적은 매출 121억원에 영업이익 63억원으로, 52%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주주들은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파주CC를 매각하기로 하고 최근 매각자문사 선정에 나선 것. ‘김영란법 시행으로 골프 빙하기가 시작되는 만큼 지금이 매각의 적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매각대상 70%는 ‘신생 골프장’

한국경제신문이 한국레저산업연구소와 함께 국내 518개 골프장의 재무상태 등을 분석한 결과 현재 매물로 나왔거나 향후 매각 가능성이 있는 골프장은 총 100개로 집계됐다. 법정관리(28개), 워크아웃(1개), 자본잠식(58개), 자발적 매각(13개) 케이스를 모두 합친 결과다.

매물로 나온 골프장 중 70% 이상은 2000년 이후 문을 연 신생 골프장이다. 태안비치(2006년) 청우(2008년) 옥스필드(2011년) 로얄포레(2012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과 충청, 영남 순으로 많다.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 불어닥친 ‘박세리 열풍’으로 전국 곳곳에 골프장이 생기면서 공급이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며 “경쟁이 심화되면서 골프장들이 회원을 대상으로 받는 그린피를 떨어뜨린 게 경영 악화에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2001년 이후 새로 문을 연 골프장은 346개에 이른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개장한 회원제 골프장의 지난해 주중 이용료(회원 기준)는 평균 2만7000~2만8000원으로, 1989년 이전에 개장한 회원제 골프장(평균 6만3000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이후 들어선 골프장의 상당수가 막대한 건설비를 마련하기 위해 회원 수를 적정 규모보다 늘린 것도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3만~8만원 수준인 회원 그린피 중 세금을 빼면 골프장 수익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경영난에 빠진 골프장은 대부분 회원 이용 비중이 높다.

반면 상대적으로 회원권을 적게 분양한 ‘명문 골프장’은 주로 ‘회원 1명+비회원 3명’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수익성이 좋다. 비회원 그린피는 주말의 경우 25만원 안팎에 달한다.

김장훈 김앤장 변호사는 “회원제 골프장은 비회원 이용률이 높아야 수익이 난다”며 “2000년대 들어 생긴 골프장의 상당수는 건설비 마련을 위해 마구잡이로 분양한 회원권이 수익성 악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퍼블릭 전환 줄을 이을 듯

골프업계는 김영란법이 국내 골프장 시장 재편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매출의 20~30%를 차지하는 ‘접대 골프’ 수입을 잃게 되는 회원제 골프장의 상당수가 ‘경영악화→자본잠식→법정관리→퍼블릭 전환→매각’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회원제 골프장의 ‘퍼블릭행(行)’은 2013년부터 시작됐다. 골프존이 골프클럽Q안성을 인수하면서 퍼블릭으로 바꾼 것을 시작으로 올해만 마에스트로CC, 젠스필드CC, 타니CC, 함평다이너스티CC가 같은 길을 걸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이 보유한 골프장도 퍼블릭으로 변신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대기업 산하 골프장의 기존 매출 가운데 상당액은 계열사 임원들이 외부 인사를 접대하는 데서 나온 것인 만큼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매출 기반이 급속히 무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적자를 내면서도 근근이 운영하고 있는 ‘좀비 골프장’ 중 상당수는 김영란법의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라며 “많은 골프장이 매각이냐, 퍼블릭 전환이냐의 기로에 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상헌/이동훈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