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야(巨野)의 '힘자랑'…7시간 기다려 7초 답변 '국감 구태' 되풀이하나

입력 2016-09-19 18:21
'국감 불치병' 기업인 증인채택

또 기업인 무더기 증인채택
사회공헌·투자활동 따져
국감인지, 기업감사인지

증인 76% 5분 미만 답변
12%는 발언 기회도 안줘


[ 손성태/유승호/박종필 기자 ]
국정감사가 행정부 견제라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기업 감사’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감 때마다 기업인을 무더기로 호출해 ‘아니면 말고’식 의혹을 제기하고 호통을 치거나, 여야 정쟁의 ‘들러리’로 세우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바쁜 기업인을 불러놓고는 질문 하나 하지 않은 채 종일 대기시키는가 하면 답변 중간에 말을 끊고 면박을 주는 행태도 국감장의 낯익은 풍경이다. 일각에선 “질문도 안 할 증인을 왜 부르는지 모르겠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인을 정쟁 ‘들러리’로

야당은 이번 국감에서 대기업들이 수백억원을 출연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의 출범 배경을 따지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 해당 상임위원회인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두 재단 설립 의혹과 관련해 신청한 기업인 증인만 30명이 넘는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대기업 총수와 최고경영진이 명단에 포함됐다. 야당은 기업인들과 함께 두 재단의 설립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을 증인으로 부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당은 무분별한 증인 신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교문위 소속의 한 여당 의원은 “기업인을 무더기 소환하는 것도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증인 명단에 오른 한 기업 관계자는 “좋은 취지로 쓰는 것으로 알고 출연했을 뿐 개별 기업이 잘못한 일은 없다”며 “바쁜 기업인을 무더기로 소환하는 것은 앞으로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발했다.


◆증인 채택 엄포…후원 요구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증인 채택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을 이용해 편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했다는 의혹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지난 19대에도 삼성 경영권 승계가 국감 심판대에 올랐다.

당시 정무위 국감에서 김기식 전 더민주 의원은 증인으로 출석한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에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 목적으로 추진된 것이 아니냐고 질의했다. 최 사장은 “합병 시기는 경영 鑽꼭?기준으로 추진했다”고 답변했다. 비슷한 사안의 해명을 위해 2년째 국감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이다.

올해 국감에서 야당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도 이 부회장의 증인 채택을 요구했다. 삼성이 새만금 신재생에너지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가 철회한 것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기업 투자 결정에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 의원들이 기업인을 국감에 부르는 표면적인 이유는 경제민주화 추진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한 야당 의원은 “골목상권 보호,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실효성 있게 하려면 재벌 총수가 나와 책임 있는 답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인 길들이기’ 차원을 넘어 반대급부를 노린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여당 한 중진 의원은 “증인 채택 과정에서 기업에 후원을 요구하는 의원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지역 소상공인들의 민원을 받아 대기업 증인을 채택하려는 의원도 있다”고 했다.

◆올해도 ‘무한대기’ 예고

정작 국회에 출석한 기업인은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질문도 받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 자료에 따르면 18대 국회에선 국감에 출석한 증인 중 12%는 질문을 전혀 받지 않았다. 19대 국회 국감 증인 1인당 신문 시간은 16분에 불과했다.

지난해 국감에선 한 외국계 기업 대표가 해외 출장 중 증인 채택 통보를 받고 급히 귀국해 국감장에 나갔지만 12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30초만 발언하고 돌아갔다. 2014년 농해수위 국감에선 6시간56분 동안 대기하다 7초간 답변하고 돌아간 기업인도 羚駭? 국회 관계자는 “올해도 국감장에 앉아서 시간만 보내다 가는 기업인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손성태/유승호/박종필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