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종시의 붕 뜬 관료들…허구의 지역균형론이 만들었다

입력 2016-09-19 17:38
세종시 이전 4년, 관료사회가 길을 잃었다는 진단은 사뭇 충격적이다. 2012년 9월 세종시 이전 후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공직사회의 ‘엑소더스(탈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보도다(한경 9월19일자 A1, 4, 5면). 세종시 이전이 본격화한 2013년 이후에만 스스로 공직을 떠난 5급 이상 공무원이 3296명에 달한다는 게 이를 웅변한다. 소위 잘나간다는 엘리트 공무원들마저 공직을 미련없이 떠나는 판국이니 공직사회 동요가 적지 않은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더 놀라운 것은 5급 이상 공무원 중에서도 이직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 공직을 그만두겠다는 이들이 줄을 섰다는 설문조사 결과다. 세종시 이전 후 공직에 대한 성취감 상실이 결정적 이유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당연히 정책의 품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장급 이상 공무원의 54%가 세종시 이전 후 정책 품질이 나빠졌다고 고백한다. 시장으로부터 고립되고, 출장비만 하루 7700만원일 정도로 길거리에서 시간을 다 허비하고, 지리적 여건 탓에 회의는 겉돌기만 하고, 장관 얼굴 보기도 힘들다는 상황에서 의사 결정인들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조차 땅에 떨어졌다는 점이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게 ‘메르스 사태’다. 보건복지부는 세종시에, 질병관리본부는 오송에 있으면서 브리핑은 서울에서 하는 등 서?세종~오송을 오가다 초동대응에 실패했다. 오죽하면 ‘세종시 리스크’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한진해운 사태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항구에서 물류문제가 뻥뻥 터지고 있는데 정작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은 내륙 한복판인 세종시에 있다. 대통령, 총리, 장관 등 수뇌부와 이를 뒷받침할 실무 공무원들이 제각각 흩어져 있으니 조직적 대응이 가능할 리 없다. 어쩌다 정부가 이 지경이 됐나.

우리는 이런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세종시 이전이 추진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이 훤히 내다보이는데도 여야 할 것 없이 충청표를 얻기 위해 추진한 정치적 합작품이었다. 지역균형이라는 도그마 자체가 그런 것이다. 세종시는 노무현 정부가 균형발전을 내걸며 밀어붙인 수도 이전이 위헌 결정을 받자 나온 후속타였다. 그 뒤 이명박 정부에서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차기 대선을 의식한 박근혜 진영의 논리에 부딪혀 실패했다.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대로다. 정부 기능이 거대한 늪에 빠져 돌아가지 않고 있다.

정부만 그런 게 아니다. 지역균형이란 이름 아래 정부와 밀접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공공기관과 공기업은 전국 혁신도시로 뿔뿔이 흩어졌다. 에너지 분야만 해도 그렇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세종에 있는데 한국전력 전력거래소는 나주에, 한국수력원자력은 경주에 내려갔다. 이러다 전력 위기나 원전 문제라도 터지면 어찌 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에너지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다 이런 위기나 위험에 직면해 있다. 허울 좋은 균형발전 도그마가 정부도, 공공기관도 전국으로 찢어놓는 바람에 집중력도, 대응력도 모두 날려버린 것이다.

세종시 이전 4년 만에 드러난 부작용이 이 정도다. 어느 선진국 정부도 이런 식으로 운영하진 않는다. 길거리에서 시간을 허비한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정치권은 왜 아무 말이 없나.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면 지금이라도 마땅히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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