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장진호전투 참전 국군 병사 유해, 66년 만의 귀향

입력 2016-09-18 09:39

6·25 전쟁 당시 카투사에 소속돼 미군과 함께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국군 병사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날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18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보관 중인 장진호 전투 전사자 유해 1구의 신원이 카투사 소속 정준원 이등병인 것으로 파악됐다" 며 "최종적인 신원 확인 절차를 곧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준원 이병은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부산에서 군에 입대했다. 개전 직후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와 국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고전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당시 28세였던 정 이병은 아내와 5살 난 딸, 갓난아기인 아들을 두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학교에 다닌 정 이병은 영어를 잘해 카투사로 미 육군 7사단에 배치됐다.

정준원 이병의 딸 정정자 씨는 군에 입대했던 아버지가 휴가를 받아 군복을 입고 집에 돌아온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정 씨는 "아버지가 미군 부대에서 가져온 맛있는 초콜릿을 손에 꼭 쥐여주며 '이제 먼 곳으로 가게 될 거야'라고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고 회고했다. 아버지가 부대에 복귀하는 날, 정 씨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지 마라"고 조르며 많이 울었다고 한다.

1950년 9월 인천 상륙작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승기를 잡았고 정 이병이 속한 미 7사단은 거침坪?북진했다. 같은 해 11월, 미 7사단은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중공군과 격전을 치렀고 정 이병은 이곳에서 전사했다.

전투 직후 미군은 정 이병의 유해를 수습하지 못했고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로 분단이 굳어지면서 그의 유해는 영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을 뻔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의 합의로 2000년 미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가 장진호를 포함한 북한 지역에서 미군 유해발굴작업을 하면서 전기가 마련됐다.

JPAC이 발굴해 하와이에 있는 본부로 보낸 유해 가운데 정 이병의 유해가 포함된 것이다. JPAC은 정 이병의 유해를 비롯해 국군으로 추정된 유해 12구를 2012년 한국에 송환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이들 유해 가운데 3구의 신원을 확인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줬으나 정 이병을 포함한 나머지 9구는 신원 확인작업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해 싱가포르에 사는 정 이병 아들의 유전자를 채취했고 정 이병 유해의 유전자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정 이병의 딸 정정자씨는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를 유해라도 다시 뵙게 된다니 꿈만 같다" 며 "내년 추석에는 가족들이 아버지 유해를 모시고 지난날을 돌이켜볼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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