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국 해운산업
부산신항 한진 터미널 가보니
용역비 등 대금 지급 밀려
항만 관련업체 "문 닫을 위기"
[ 김태현 기자 ] 2일 오전 부산신항만에 있는 한진해운 터미널. 외국 선사 소유의 선박 2척만 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진해운 선박은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 박보성 한진해운 경영지원팀 사원은 “래싱(컨테이너를 선박에 고정하는 작업) 업체들이 밀린 용역비 지급을 요구하며 작업을 거부하는 바람에 지금 6척의 한진해운 선박이 항구에 배를 못대고 바다를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래싱업체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부산신항에서 만난 래싱업체 A사 대표는 “오죽 하면 일을 거부하겠느냐”며 “용역비가 3개월간 밀리는 바람에 직원들에게 월급도 못주고 회사 문을 닫을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모항(母港)인 부산신항은 사실상 마비됐다. 2006년 개항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부산항만공사가 중재에 나서면서 이날 오후 래싱업체들이 일단 작업을 재개하기는 했다. 하지만 한진해운이 대금을 지급하지 못한 곳은 래싱업체뿐이 아니다. 항만 곳곳에서 “배에 필요한 각종 물품이나 기름값 등 미지급금이 곳곳에 깔려 있어 彫?어디서 또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는 전망이 많다.
한진해운 소유의 빈 컨테이너 1만3000여개가 쌓여 있는 야적장도 인적이 드물었다. 평소엔 화물을 싣는 작업이 한창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항만 관계자는 “지금 같은 상황이 1주일만 지속되면 부산항은 화물 처리를 제대로 못해 3류항으로 추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목진용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연구본부장은 “부산 한진터미널은 연간 270만개의 컨테이너를 처리한다”며 “이대로 문을 닫으면 1300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한국도 ‘해양국가’로서의 위상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부산에서 미국으로 가는 화물을 처리하는 한 관계자는 “급하게 수송해야 하는 32개의 컨테이너 화물을 한진 부두에서 다른 부두에 정박한 외국 선박에 실어나르느라 300만원 이상을 손해봤다”며 “운송비가 컨테이너 한 개에 1600달러로 평소보다 40%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에서 시작된 물류대란은 미국 유통가로 번졌다. 미국 소매산업지도자연합은 상무부와 연방해상위원회에 ‘항만과 화물업자, 한국 정부와 함께 혼란을 수습해 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제시카 댕커트 소매산업지도자연합 선임이사는 “하필이면 10~11월 쇼핑 시즌을 앞두고 소매업체들이 물건을 잔뜩 쌓아야 할 시점에 대혼란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