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버스데이 인덱스 펀드!

입력 2016-09-02 13:48
수정 2016-09-02 13:48


(뉴욕=이심기 특파원) 40년전인 1976년 8월31일 뱅가드 그룹의 첫번째 인덱스펀드가 태어났다. 현재 ‘뱅가드 500 인덱스펀드’로 불리는 이 펀드는 S&P500지수를 추종하도록 설계됐다.

출발은 불안했다. 기대에 못친 투자금이 문제였다. 당초 이 펀드를 만든 뱅가드의 설립자 존 보글(사진)의 목표는 1억5000만달러였다. 하지만 끌어들인 투자금은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1130만달러에 불과했다.

이 펀드의 인수(언더라이팅)을 맡았던 은행들은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주고 펀드를 끝내자”고 뱅가드에 제안했다. 보글은 그러나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이렇게 어렵게 출발한 펀드는 지금 어떻게 성장했을까. 40년째 생일을 맞은 지난달 31일 이 펀드의 운용자산은 2520억달러로 불어났다. 2만2300배로 커진 것이다.

1976년 당시 S&P500지수와 연동되는 인덱스 펀드를 만드는 것은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투자전략을 사용한 ‘고-고(go-go)펀드’는 1960년대말과 1970년대 초반 시장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었고 몇몇 펀드는 수익률 100%를 기록하기도 했다. 게다가 시장을 ‘이기기’보다는 ‘맞춰가자’는 전략은 무엇보다 투자비용을 줄이는 장점이 있었다. 지수를 따라가도록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은 매우 쉬웠고, 비용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폴 사무엘슨 MIT 교수는 1974년 기고한 ‘판단에 대한 도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뛰어난 실적을 올리는 주식을 고르는 것은 헛된 노력”이라며 인덱스 펀드에 힘을 실어줬다. 모든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투자업계를 떠나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인덱스펀드가 첫 출범한 이후 1970년대까지는 부진한 주식시장으로 인해 성장세가 미약했다. 하지만 1982년부터 2000년까지 증시가 활황을 보이는 강세장이 이어지며 연 평균 18%의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증가세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보글은 “당시 처음으로 시장을 이기면서 인덱스펀드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1976년부터 1985년까지 10년간 인덱스 펀드의 운용자산은 5억1100만달러로 45배 가량 증가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그 다음 10년간은 100배가 넘는 성장세를 보이며 1995년에는 550억달러로 늘었다. 그 다음 10년뒤 2005년에는 8680억달러까지 급증했다.

인덱스펀드의 대명사가 된 뱅가드가 올들어 지난달까지 끌어들인 투자금은 1980억달러. 지난달에는 월간기준 역대 최대규모인 248억달러가 유입됐다. 지난해 세운 2360억달러 기록을 깨는 것은 시간문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뱅가드의 성과는 세계 자산운용시장의 중심축이 ‘액티브’에서 ‘패시브’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뱅가드의 운용자산은 3조8000억달러에 달하며 글로벌 자산운용업계에서 블랙록 다음 가는 ‘넘버 2’로 자리를 부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칼럼니스트인 제이슨 즈堅榴?“인덱스 펀드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투자비용을 90%까지 줄이며 개인투자자들의 수익을 높이고, 금융시장을 민주화시켰다는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피버스데이 인덱스펀드. (끝)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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