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규제 '불똥'
LG화학 배터리 장착하는 현대·기아차,
보조금 못 받으면 가격경쟁력서 게임 안돼
배터리 바꾸면 설계 다시해야…쏘나타 PHEV 내년 출시 불투명
현대·기아차, 중국 시장 '타격' 불가피…중국산 배터리로 교체도 고민
[ 김현석 / 장창민 기자 ] 한국 배터리업체를 겨냥한 중국 정부의 규제 불똥이 현대·기아자동차로 튀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내년 중국에 플러그인하이브리드카(PHEV)를 출시할 계획이지만 대당 1300만~2900만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판매가 어렵다. 배터리를 공급하는 LG화학이 중국 정부의 배터리 모범기준 인증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다. LG화학 삼성SDI의 배터리를 써온 GM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도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중국산 배터리 사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상된다.
현대차의 중국 현지 합작회사인 베이징현대는 급성장하는 중국 전기차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 4월께 쏘나타 PHEV를 중국에 내놓을 계획이다. 기아차 합작회사인 둥펑위에다기아도 내년 10월 K5 PHEV를 중국에 투입할 예정이다. 두 차량은 모두 LG ??배터리를 쓰고 있다. 문제는 LG가 중국의 모범기준 인증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전기차 보조금 정책’ 개편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인증받은 업체가 생산한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에만 보조금을 줄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과 삼성SDI는 지난 6월20일 4차 인증 심사에서 탈락했다. 공업정보화부는 당초 제5차 모범기준 인증 신청을 8월에 받겠다고 했지만 아직 일정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LG화학 배터리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면 현대·기아차는 PHEV를 중국에 출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친환경차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차량은 가격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출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현대·기아차엔 비상이 걸렸다. 배터리를 보조금 수령이 가능한 중국 업체 제품으로 바꿔 내놓으려 해도 쉽지 않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PHEV와 전기차는 배터리를 바꾸면 차 설계를 다시 해야 해 1~2년은 걸린다”며 “현대차그룹은 그 기간만큼 중국 시장의 공략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은 전기차가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PHEV를 포함한 전기차 판매량은 20만7382대로 미국(11만5000대) 유럽(19만3439대)보다 많다.
현대·기아차는 6월 중국형 신형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투입한 데 이어 내년에 PHEV 출시를 목표로 준비해왔다. 중국 중앙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은 주행거리에 따라 2만5000위안(100~150㎞)에서 5만5000위안(250㎞ 이상)까지 달라지지만 PHEV는 주행거리 50㎞ 이상이면 3만위안을 받을 수 있다. 지방정부 보조금 체계도 비슷하다. 베 兼?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번호판 발급 규제가 면제되는 것도 전기차와 PHEV가 같다.
더 큰 문제는 PHEV뿐 아니라 앞으로 아이오닉 등 순수 전기차 시장 진입도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지난해부터 중국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고심해온 현대·기아차가 친환경차를 앞세워 판매량을 다시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 어그러지게 된다는 얘기다.
다른 글로벌 완성차업체도 현대·기아차와 사정은 비슷하다. GM과 폭스바겐, 아우디, PSA 등도 내년 중국에서 전기차를 대거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 대부분은 LG화학과 삼성SDI 배터리를 장착해왔다.
일부 업체는 국내 배터리업체가 인증받지 못함에 따라 중국산 배터리를 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도 일부 모델에 중국산 배터리를 얹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시장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중국 옌타이연구소에서 아이오닉 기반이 아니라 다른 전기차에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해 개발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현석/장창민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