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공모ELS 신탁계정서 투자금 운용"
담보 활용·장외 파생상품 매매 등 불가능해져
당국 "규제 줄일 것"…업계 "시장 위축 불가피"
[ 이유정 기자 ] 금융위원회가 증권사가 발행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을 고유 계정이 아니라 신탁계정에 넣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이유는 증권사 파산 위험으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대부분 ELS 투자자는 투자 약정에 따른 손실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발행 증권사의 신용위험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ELS 투자 잔액이 70조원으로 불어난 상황에서 일종의 ‘방화벽’을 쳐놓지 않으면 나중에 시장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하지만 업계는 신탁계정이 안고 있는 각종 운용 제약으로 ELS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시장 자체의 성장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무엇이 달라지나
증권사가 향후 ELS 자금을 신탁계정에서 운용하면 증권사의 신용 위험은 사라진다. 증권사의 신용이 나빠지면 그대로 영향을 받는 고유계정과 달리 신탁계정 안에 있는 자금은 신탁법에 따라 보호받기 때문이다.
신탁계정이 도입되면 2013년 말 ‘동양 사태’가 터졌을 때 동양증권 ELS를 사들인 투자자들이 30%의 손실을 감수하고 ELS를 중도환매한 ‘런(대규모 환매)’ 사태가 나타날 우려가 사라질 것으로 금융당국은 보고 있다. 자기자본 규모 14위 증권사인 한화투자증권이 올 상반기에만 2000억원의 손실을 내는 등 증권사의 건전성이 단기적으로 악화되더라도 투자자들은 크게 우려할 게 없어진다는 의미다. 또 여러 계좌에 복잡하게 흩어져 있는 ELS 관련 자금을 신탁계좌에서 한 번에 관리하기 때문에 감독이 쉬워지고 시장 투명성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다음달 운용부문 외에 판매부문 건전화와 시장 쏠림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보수적인 투자자에게 무분별하게 ELS를 팔지 않도록 ‘부적합확인서’ 사용 관행을 재정비하고, 특정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발행 비중을 제한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부작용은 없나
증권사들이 자금을 운용하는 운신의 폭은 크게 좁아진다. 신탁계정을 운용할 때는 외부 자금을 차입하거나 위험 회피(헤지)를 위해 장외 파생상품을 매매하는 게 불가능하다. 신탁계정 안에 있는 자산을 담보로 활용하거나 대차거래를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법 개정을 통해 운용 제약을 상당 부분 해소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의 불만이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다.
업계는 특히 ELS 자금을 신탁계정에서 운용해 현재 연평균 6% 수준인 기대수익률이 연 4~5%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아예 시장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주가지수의 움직임과 연계한 파생상품 시장은 수익률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ELS 시장에는 매월 1조원이 넘는 자금이 순유입됐다. 하지만 7월 3368억원, 8월 들어선 2조원이 넘는 돈이 순유출됐다.
전문가들은 ELS의 수익률이 나빠지면서 투자자들이 시장을 이탈했다고 설명한다. 올해 초만 해도 세 종류의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의 수익률은 연 7~8%에 달했다. 하지만 최근 나온 상품들은 연 6%가 넘는 상품을 찾기 어렵다. 기초자산으로 쓰이는 주가지수의 변동성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의 ELS 담당자는 “ELS는 확률은 낮지만 자칫 잘못되면 원금의 절반 이상을 날릴 수 있는 상품”이라며 “위험을 무릅쓴 대가가 연 4% 안팎에 불과하다면 투자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신탁계정
증권회사 등 신탁 설정자가 위탁자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수탁해 관리·운용·처분하는 계좌. 신탁계정 안에 있는 자산을 운용해 나온 수익은 위탁자가 지정한 수익자에게 지급한다. 신탁계정 안에 있는 자산은 신탁법에 따라 보호되기 때문에 수익자가 최우선 권리를 가진다.
이유정/송형석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