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서 기자 ]
‘고립무원(孤立無援).’
지난해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국제무대에서 외톨이였다. 문자 그대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서 있었다. 2013년 3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자국 영토로 병합하면서 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가 시작됐다.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독재자로 비판받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원하자 국제사회의 눈총이 쏟아졌다. 급기야 터키 공군에 전폭기를 격추당하는 모욕까지 당했다.
상황은 올해 들어 급반전했다.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러시아의 존재감이 한껏 드러났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결정, 터키의 쿠데타 시도, 이슬람 국가(IS) 테러, 한국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등 글로벌 외교 축이 요동칠 때마다 관련국은 러시아 눈치를 봤다.
터키 쿠데타 계기로 앙숙이 친구로
터키 일간지 휴리예트데일리뉴스는 지난 18일 “터키가 인지를릭 공군기지를 러시아 군대에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인지를릭 기지는 터키와 서방 간 군사 협력의 상징이다.
러시아를 견제하는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대가 주둔하며 미국은 핵무기까지 배 ′杉? 터키 정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곳에서 러시아 전투기가 뜨고 내릴 가능성이 생겼으니 서방국들로서는 난감한 노릇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11월24일 이후 터키와 앙숙이 됐다. 터키가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며 러시아 전폭기 SU-24를 격추하면서다.
꽁꽁 얼어붙은 두 나라 관계는 지난달 15일 터키에서 쿠데타 시도가 발생하면서 급속히 녹아내렸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정권 강화를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적 펫훌라흐 귈렌을 미국이 감싸고 돈다고 판단하면서 러시아 쪽에 성큼 다가선 것이다.
러시아 편에 선 反美국가 이란
러시아는 시리아에 군대를 보냈다가 궁지에 몰렸다. 시리아는 사정이 복잡한 나라다. 대통령 등 지도층은 이슬람 시아파로 분류되지만 국민 대다수는 수니파다. 상당수 국민은 종파도 다르고 독재정치까지 펴는 알아사드 정권에 반기를 들었고 내전이 발생했다. 혼란스러운 정국에 IS까지 창궐했다.
IS 진압을 이유로 파병한 러시아는 친(親)러시아 성향의 알아사드 대통령을 도왔다. 미국 등 서방세력은 시리아 내 IS 격퇴에는 러시아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독재자 알아사드의 축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갑갑해진 러시아를 이란이 돕겠다고 나섰다. 이달 들어 이란은 러시아에 하마단 공군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란은 추가로 기지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英·中도 러시아에 ‘러브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0일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제안했다. 메이 총리는 “특정 이슈에 의견 차이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현안들에 관해 솔직하게 의사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병합한 이후 EU의 대(對)러시아 경제제재를 주도하던 영국의 태도가 부드럽게 변한 이유는 브렉시트가 결정적이다. EU에서 빠져나오기로 하면서 개별 국가로 러시아와 각을 세우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다툼 등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반목이 심해지고 주한미군이 사드 배치 결정까지 내리면서 러시아와 더욱 가까워졌다.
박종서 한국경제신문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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