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쌤이 전해주는 대한민국 이야기 (31)
‘전우여 잘 자라’ 부르며 북진
6·25전쟁의 비극을 잘 드러낸 노래 두 곡이 있습니다. ‘전우여 잘 자라’(박시춘 작곡, 유호 작사)와 ‘굳세어라 금순아’(박시춘 작곡, 강사랑 작사)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 국군과 유엔군은 수많은 전우를 잃은 낙동강 전선을 뒤로 하고 추풍령을 넘고 한강을 건너 38선에 이르렀습니다. 진격하면서도 그 참혹한 전쟁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꽃같이 별같이 스러져간 병사들을 잊을 수 없었지요.
1.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여 잘 자라.
2.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피던 /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여.
3.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 한강수야 잘 있느냐 우리는 돌아왔다 /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 주는 / 노들강변 蹄?위에 잠들은 전우여.
4.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그런데 38선에 다다른 유엔군에 진격을 멈추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전쟁을 끝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38선을 ‘국경’으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소련이 불법으로 막아놓은 경계선이었기 때문이지요. 1950년 9월29일 대통령은 북진을 결정하고 “내가 이 나라의 군 최고 통수권자이니 나의 명령에 따라 북진하라”는 명령서를 육군 수뇌부에 전달했습니다.
이 결정에 따라 국군은 10월1일 38선을 통과해 북쪽으로 진격했습니다. 이를 기념해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정했지요. 10월7일에는 유엔군이 38선을 넘는 것을 허용하는 결의안이 유엔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아군은 거침없이 치고 올라가 10월19일에 평양 점령했습니다. 통일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지요.
눈앞까지 온 통일과 중공군 개입
그런데 다급해진 북한이 소련과 중국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아군이 평양에서 승전을 기념하던 그날, 30만명이나 되는 중국 공산군은 압록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중공군은 소리 없이 한반도에 들어왔지요. 10월25일 아군이 북한 깊숙이 들어갔을 때 숨어 있던 중공군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중공군의 제1차 공세였습니다. 크게 패한 아군은 더 많은 중공군이 내려오기 전에 서둘러 전쟁을 끝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11월24일 ‘전쟁을 끝내기 위한 총공세’를 개시했습니다. 이에 맞춰 중공군도 제2차 공세를 벌였지요. 커다란 손실을 입은 아군은 중공군의 병력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1월 말에는 모든 전선에서 중공군에게 밀려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서부 전선의 미군은 12월 말에 38선 부근까지 밀려 내려왔지요. 그런데 동부 전선에서 장진호 전투라는 격전을 치른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에 막혀 육지 길로 내려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해안에서 배를 타고 후퇴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미군의 군함에는 민간인을 태울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따르는 피란민 30만명이 흥남 부두로 몰려왔지요. 국군의 김백일 소장과 현봉학 통역관은 “미군이 피란민을 버리고 간다면 국군이 피란민을 엄호하여 육로로 후퇴하겠다”며 민간인을 배에 태워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들의 굳은 의지에 감명 받은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은 민간인의 승선을 허락했습니다. 군함들에는 정원의 열 배가 넘는 피란민이 올라탔지요. 이 철수 작전 덕분에 9만명이 넘는 피란민이 자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빅토리아호에서 태어난 다섯 아기
그 중 최대 승선 인원이 3000명인 메러디스빅토리아호라는 화물선에는 무려 1만4000명의 피란민이 탔습니다.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레너드 라루 선장은 배에 실려 있던 장비와 무기를 바다에 버렸습니다. 3일의 항해 끝에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을 때 피란민의 숫자는 다섯 명이 더 늘어나 있었습니다. 아수라장 같은 배 안에서 새 생명들이 태어난 것이지요. 세계에 ?가장 인도적인 철수 작전으로 불리는 흥남 철수 작전은 12월25일에 끝났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부산 등지에 내린 피란민들은 ‘굳세어라 금순아’ 가사처럼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1.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 부두에 /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 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 홀로 왔다
2. 일가 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 영도 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
3.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 천지 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 통일 그날이 오면 / 손을 잡고 웃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추어보자.
글= 황인희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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