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콘퍼런스, 사흘간 밤샘 과학 토론
원자 1개 굵기 1나노미터 금속선
반도체 미세공정 대안으로 주목…정보 저장하는 메모리 기능도
전세계 전문가 30명 총출동…포항서 17년간 연구성과 공유
[ 박근태 기자 ]
반도체산업의 성패는 전자회로의 선폭(線幅)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려 있다. 인텔과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인간이 가진 기술로는 선폭 5나노미터(1㎚=10억분의 1m)를 최소 한계로 보고 있다. 과학자들은 대안 기술로 이른바 원자 한 개 정도 굵기를 가진 원자선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17~20일 포항 베스트웨스턴호텔에서는 세계 원자선 연구자 30여명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IBS 콘퍼런스가 열렸다. 개인 사정으로 빠진 한두 명을 제외하고 특정 분야를 연구하는 세계 리더급 연구자가 한자리에 모인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원자선 17년 연구 집대성
원자선은 진공상태에서 실리콘 표면에 1~2㎚로 형성되는 금속선이다. 선폭이 원자 1~3개에 불과해 원자선이란 이름이 붙었다. 원자선 연구는 1999년 당시 도쿄대 조교수이던 염한웅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자제어저차원전자계연구단장(포스텍 교수)이 원자선이 가진 성질을 밝히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염 단장은 당시 금속 원자선이 실온에서는 금속처럼 전기를 통하지만, 온도를 낮추면 전기가 통하지 않는 비금속처럼 된다는 ‘상전이 현상’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발표했다. 이후 각국 연구진은 금, 인듐, 이리듐과 같은 금속을 이용해 원자선을 만들고 이 현상의 구체적 원인을 밝히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원자선의 성질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원자선에 불순물을 넣으면 전자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규명됐다. 염 단장 연구진은 2008년 선폭이 세계에서 가장 가는 금 나노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일본의 원자선 연구 대가 하세가와 슈지 도쿄대 교수는 “원자선 연구는 원래 진공상태의 실리콘 표면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현상을 규명하려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점차 반도체 선폭 문제를 해결하고 전기 소모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응용 연구로 발전했다. 원자선을 이용해 전자 하나로 1비트(bit)를 처리하는 전선과 소자를 만들면 발열과 전력 소모를 모두 줄인 초소형 전자기기를 생산할 수 있다.
◆원자선으로 소자 만든다
원자선 연구는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원자선이 전자 하나를 단순히 이동시키는 전선 역할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하는 정보를 넣었다 빼는 메모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냅습막?확인했다. 염 단장 연구진은 지난해 인듐 원자선에서 전자를 원하는 방향으로 하나씩 이동시켜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인듐 분자 구조 사이에 나타나는 ‘솔리톤’을 통해 전자가 함께 이동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연구진은 이 원리를 이용해 간단한 논리 연산을 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염 단장은 “원자선만을 이용해 연산이 가능한 원자소자 개발에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염 단장은 그러면서 솔리톤과 전자공학을 합쳐 솔리토닉스가 주도할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했다.
이번 행사에선 초전도(超傳導) 원자선 연구가 다음 과제로 제시됐다. 초전도는 극도로 낮은 온도에서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으로, 에너지 손실 없이 소자를 작동할 수 있는 꿈의 기술이다. 하세가와 교수는 “안경테와 같은 작은 웨어러블 기기에 사용하려면 전기 소모가 적어야 한다”며 “다양한 소재로 만든 원자선을 대상으로 시험하고 있다”고 했다.
포항=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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