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의 비타민 경제] 골프 클럽은 왜 14개로 제한할까

입력 2016-08-17 18:50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골프가 안 될 때 미국인은 이론 공부를 하고, 일본인은 연습장에 가는데, 한국인은 프로숍으로 간다는 골프 유머가 있다. ‘실력은 뒤져도 장비는 뒤질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다.

프로골퍼의 실전 클럽 수는 14개까지다. 1930년대 영국에서 “골프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자연을 극복하는 운동”이라고 규정하고 정한 규칙이다. 15개 이상이면 실격이다. 드라이버 헤드의 반발계수도 0.83을 넘으면 안 된다. 0.83은 1m 높이에서 떨어뜨린 공이 클럽페이스에 맞고 튀어오른 높이가 83㎝라는 의미다. 반발계수가 0.01 상승할 때마다 비거리가 약 2야드 늘어난다. 이런 제약이 없었다면 골프가 장비 무한경쟁이 됐을 것이다.

치열한 승부가 돈과 직결되는 프로스포츠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위치적 군비경쟁(positional arms race)’과 맞아떨어진다. 군비경쟁은 아무리 많은 비용을 투입해도 서로 상쇄되고 상대방보다 더 쓴 만큼만 효용이 되는 소모전이다. ‘위치적’이란 수식어는 누별?순위가 오르면 다른 쪽은 떨어지는 경쟁이어서다.

프로는 이겨야 하는데 그렇다고 무한정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따라서 프로팀들은 군비경쟁을 자제하려는 담합 의지가 있다. 군비경쟁을 억제하자는 합의가 ‘군비통제 협약’이고 스포츠 규정에 반영된다.

1939년 미국 프로풋볼리그(NFL)에서 처음 도입한 신인 드래프트가 대표적이다. 지난 시즌 성적이 나쁜 팀부터 차례로 우수 신인을 지명해 약팀에 전력 보강 기회를 주는 것이다. 동시에 스카우트 과당경쟁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근육강화제를 강력히 규제하고, 팀별 엔트리 제한을 두는 것도 군비통제의 일환이다.

승부가 선수 기량이 아니라 돈과 장비에 의해 좌우되면 재미가 없다. 따라서 장비를 쓰는 종목은 대개 엄격한 제한 규정이 있다. 골프처럼 테니스와 배드민턴은 라켓의 헤드 크기를 규제한다. 펜싱은 검 길이와 무게에 상한선이 있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포뮬러원(F1) 머신도 제약이 까다롭다. 머신 무게는 드라이버가 탄 상태에서 640㎏을 넘어야 한다. 엔진은 2014년부터 ‘1600cc, 6기통, 터보엔진’이 규격이고, 결승의 연료량은 100㎏ 이하다. 그래도 선수 실력보다 자동차 기술에 좌우된다는 비판이 많아 내년에 엔진 규정이 또 바뀐다.

위치적 군비경쟁은 학생들의 석차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모두 학원에 다니고 밤샘공부를 하니 석차 올리기가 어렵다. 심야 학원 교습 금지는 군비통제 협약인 셈이다. 이 밖에 자기소개서 분량, 선거비용, 취학연령 등을 제한하는 것도 군비경쟁을 막는 장치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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