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호무역에 손놓은 한국] 미국 대선판 '한국 때리기'에 '관세 폭탄'까지…정부 "뾰족한 수 없다"

입력 2016-08-09 19:14
(1) 전략없는 대미 경제외교

기업들 "누가 당선되든 반한 정서 확산 우려"
예산·인력 부족에 미국 정관계 네트워크 '빈약'


[ 뉴욕=이심기 / 워싱턴=박수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반복적인 ‘한국 때리기’를 지켜보는 현지 한국 기업인의 반응은 착잡하다.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그의 연설을 ‘믿는’ 1000만여명의 지지자들이 가질 ‘반한(反韓) 정서’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자칫 한국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안테나가 없다”

워싱턴DC에 있는 주미 한국대사관 측은 미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후보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판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확대 요구 등이 계속되는 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발언 배경은 차치하고라도 이를 확인해볼 인적채널과 뾰족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트럼프 캠프의 경제팀이 어떤 인사로 이뤄져 있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트럼프와 거래한 헤지펀드 매니저인 칼 아이칸이나 의회에서 가장 먼저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앨라배마) 이 경제 고문으로 알려진 정도다. 그 외에 누가 어떤 경로를 통해 한·미 FTA 정책 등을 조언하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주미 대사관 측은 그동안 여러 외교 채널을 가동해 트럼프 캠프 측 경제팀 인사를 만나려고 백방으로 뛴 것으로 알려졌다. 세션스 의원 등을 만나서는 “한국 측의 고민을 잘 알고 있다”는 답변을 듣는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은 선거 국면이고 선거가 끝나면 원점에서 한·미 관계를 다시 점검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는 것이다.


◆“대선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지난 6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서 열린 롯데케미칼 화학공장 기공식에 지역 상·하원의원은 물론 루이지애나 주지사도 불참했다. 30억달러를 투자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개인 일정을 이유로 불참한 것이다. 그 대신 주정부의 경제개발국장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한 참석자는 “한국이 현지 투자를 통해 미국 지역경제 성장과 고용에 기여하는 점을 부각시킬 좋은 기회를 그대로 날려버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소극적인 대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트럼프의 경우 공화당 대선후보라는 상징성과 그의 발언을 추종하는 정치세력을 감안하면 보다 과감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한국은 미국에서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 ‘일단 기다린다’는 전략”이라며 “차기 대통령이 확정되고 인수위원회가 꾸려지면 대응한다는 전략이지만 그때는 이미 늦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11월 대선까지 3개월간 한국에 대한 부정적 메시지를 그대로 방치하는 데 따른 기업들의 우려도 크다.

◆조직, 인력, 예산 부족

정보를 수집할 인력과 조직, 예산도 문제다. 뉴욕 총영사관 관계자는 “월가의 인맥과 교류하고 대선 관련 정보와 시장동향을 모니터링하는 인력이나 조직, 예산은 태부족”이라고 말했다. 뉴욕 총영사관은 시장정보와 각종 기업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블룸버그 단말기조차 전임 재경관 시절에 마련했다. 연간 사용료 2만5000달러가 부담스러워 시장정보를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금융회사에 의존해왔다.

미국 내 외교조직을 재편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미국 내 10곳에 달하는 총영사관이 제각각 움직이면서 효율적인 대응능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각자 ‘실적’ 경쟁을 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나 일본처럼 주미대사관이 ‘사령탑’ 역할을 하면서 지역별 영사관과 미국의 선거대응 전략 및 정보를 공유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부족한 예산이나 인력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이심기/워싱턴=박수진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