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 수준으로
법인세율 35% → 15%로
'유턴자본'엔 10% 저율 과세
기업 세부담 줄여 투자 유도
"사망한 후에 과세해선 안돼"
재산 관계 없이 상속세 폐지
육아비용 전액 소득공제도
[ 워싱턴=박수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감세와 규제 완화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채택해 경제를 부흥시킨 정책과 비슷하다. 지난달 말 이슬람 비하 발언으로 시작된 위기국면에서 탈출, 획기적인 경제 이슈로 흐트러진 공화당 지지층의 표심을 다잡겠다는 전략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가 세금 혁명을 약속했고 보수 유권자층이 환호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법인세 인하로 기업 살리겠다”
트럼프의 경제 공약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감세 방안이다. 미국 법인세 최고세율(명목기준)은 35%로 세계 4위 수준이다. 아랍에미리트(50%), 아프리카 차드(49%)는 미국보다 높지만 아르헨티나, 콩고 등은 미국과 같다. 트럼프는 이를 이익규모와 관계없이 15%로 확 낮추겠다고 했다.
15%는 영국이 지난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찬성 결정 이후 밝힌 법인세율 인하목표(20%→15%)와 같고, 대표적 조세피난처인 아일랜드(12.5%)와도 비슷한 수준이다. 트럼프가 집권하면 글로벌 법인세 인하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트럼프는 미국 기업들이 해외 유보금을 미국으로 가지고 들어올 때 10% 세율만 적용하겠다고 제시했다. 현행 35%인 세율 탓에 조세피난처에 쌓아두고 있는 해외 수익금을 국내로 유입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그는 “2조달러에 달하는 미국 기업들의 해외 유보금이 상당수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며 “유입된 자금은 미국 제조업에 다시 투자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는 7단계인 소득세 과세구간을 3단계로 간소화하면서 최고세율도 39.6%에서 33%로 낮추기로 했다. 상속재산이 개인 545만달러, 부부합산 1090만달러 이상일 때 부과하는 상속세는 아예 폐지하겠다고 했다. 그는 “미국 노동자들은 평생 세금을 내왔다”며 “사망한 다음에도 과세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감세정책 효과 논란일 듯
트럼프의 감세 정책은 향후 10년간 10조달러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수반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때문에 최고 소득세율을 25%로 인하하기로 한 대목을 33%로 인하한다고 수정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즉각 포문을 열었다. 그는 “대대적인 감세는 효과가 없고, 부자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으로 판명이 난 구식 경제이론”이라고 비판했다. 감세로 가뜩이나 어려운 재정만 축나고, 소비·경기 진작으로 이어지는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트럼프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로널드 레이건 전 정부는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최고 70%였던 개인 소득세율을 28%로, 48%였던 법인세율은 34%로 각각 낮추는 공격적 감세 정책을 시행해 경제를 부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작용을 겪었다. 감세로 경제가 좋아지면 재정이 보강된다는 이론이 빗나갔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정부 역시 2001년 9·11테러 이후 감세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수행 등으로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재정을 파탄 직전으로 몰고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1년 집권 초기 재정이 500억달러 흑자였으나 감세 정책이 가시화된 이후 2005년에는 2600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트럼프 캠프 측은 “감세와 규제 완화로 연 6% 경제 성장을 달성하면 8년 내 19조달러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다 해소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