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일본 황실전범(皇室典範)

입력 2016-08-09 19:00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현행 일본 헌법 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갖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고 돼 있다. 상징적 존재로서의 천황의 역할은 매우 크다. 내각총리를 임명하는 것도 그의 권한이며 최고재판소장도 임명한다. 국회를 소집하고 중의원을 해산하는 것 모두 천황의 임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모두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천황은 국사에 관련한 행위만을 하게 돼 있을 뿐 국정(國政)에 관한 권능을 갖지 못하도록 헌법에 명시돼 있다. 천황의 승계나 호칭을 정하는 황실전범도 마찬가지다. 헌법 2조에 “황위는 세습되며 국회가 의결한 황실전범(皇室典範)이 정하는 바에 의해 이를 계승한다”고 돼 있다. 국회가 이 규범을 개정하도록 돼 있는 것이다.

1889년 제정된 메이지 헌법에서 ‘천황은 국정을 총괄’하는 막강한 힘을 지녔다. 급조된 이데올로기였던 국가신도(神道)에 의해 천황은 현인신(現人神)으로 신격화됐다. 메이지 천황이 만든 황실전범 또한 국회가 전혀 개입할 수 없는, 헌법과 맞먹는 규정이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천황의 지위가 격하되면서 황실전범도 도마에 올랐다. 미 군정청은 이 법안 개정에 천황이 일절 관여할 수 없도록 했다. 황실전범은 일반법과 같은 헌법의 하위법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당시 황실전범 개정 과정에서 가장 큰 논란이 퇴위 문제였다. 미 군정청은 황위 계승에 대해 운명할 때까지 황위를 묶어두는 것은 자연인을 너무 구속한다며 퇴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황위에 개인은 없고 모두 공적 업무를 맡는 것이라는 주장이 만만찮았다. 퇴위의 자유를 인정하면 천황으로 취임하지 않을 자유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결국 이 조항은 폐기됐다. 남성만이 황위를 계승하는 문제도 늘 논란거리다. 한동안 사라졌다가 새로 주목받는 이슈다.

아키히토 천황이 생전 퇴위 의사를 공식화해 일본 열도가 들끓고 있다. 200년 만에 처음이며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처음이다. 당장 황실전범 규정을 고쳐야 한다. 황실전범만이 아니다. 헌법까지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2년 이상 걸릴 작업이라고도 한다. 아키히토 천황은 엊그제 대국민 메시지에서 “상징 천황으로서의 본분이 항상 끊임없이 안정적으로 이어지기를 염원한다”고 밝혔다. 천황을 일본국 원수로 규정해 행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자민당 개헌 취지와 대치된다. 일본인에게는 아주 복잡한(?) 문제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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