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금융부 기자) 금융회사들이 대출을 해줄 때 가장 먼저 보는 건 상환 가능성입니다. ‘이 사람이 제 때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죠. 온갖 서류와 소득, 재산 등을 꼼꼼하게 살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금융회사들도 건전성을 관리하면서 일정 수준의 수익을 내야 하니 당연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금융회사도 있습니다. 사회적 금융을 실천하는 곳들이죠. 사회적 금융은 쉽게 말해 돈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다고 보면 좋을 듯 합니다. 경제적 이익만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금융회사도 필요하다는 반성에서 나왔습니다. 각국에서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활동에 돈을 투자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입니다.
스페인에서 확산하고 있는 사회적 금융에 전 세계 금융회사 종사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고요. 대표적인 곳으로 라보랄 쿠스타를 들 수 있습니다. 라보랄 쿠스타를 알려면 몬드라곤 복합체부터 알아야 합니다. 몬드라곤 복합체는 스페인의 복합 협동조합입니다. 지난해 기준 매출 118억유로(약 16조원), 고용 인원 7만4100여명의 규모를 갖췄습니다. 해외에 80여개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협동조합으로 꼽힙니다.
몬드라곤 복합체는 110개 협동조합과 260개 자회사로 이뤄졌는데, 금융 부문의 핵심이 바로 라보랄 쿠스타입니다. 일종의 신용협동조합이죠.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신협인데, 2014년 기준으로 약 1억900만유로의 수익를 거뒀답니다.
스페인이 경제 위기 등에 맞닥뜨렸을 때 협동조합에 대한 각종 대출금리를 낮추고, 파산 위험이 있는 기업들의 회생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면서 함께 위기를 극복했던 사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일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도 문턱을 낮추면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죠. 2000년대 초반부터는 수출금융 등 금융 서비스를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라보랄 쿠스타의 조직 운영은 조합원과 직원이 직접 합니다. 수익에서 나오는 잉여금은 별도로 배당하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는 기금에 재적립합니다. 이 때문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적인 역할 했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평가도 받았답니다.
스페인에서 사회적 금융을 실천하는 또 다른 곳으로 피아레 방카 에티카를 들 수 있습니다. 비영리 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을 주로 합니다. 이곳은 조합원 개인이 모두 주인입니다. 개인인지, 기관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조합원이 1인 1표를 갖고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죠. 최소 5주(약 35만원)를 사면 조합원 자격이 주어집니다. 비영리 기관은 최소 10주, 일반 기업은 최소 30주를 사야 하고요. 물론 윤리위원회에서 심사한 후에 조합원 자격이 부여됩니다.
이 곳은 사회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문에만 대출을 해준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거나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 지속 가능한 환경 보존이나 문화와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에 돈을 빌려줍니다. 책임 있고 투명한 자금 운용을 위해 어디에, 어떻게 돈을 사용했는지를 홈페이지에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대출이 필요한 비영리 프로젝트 관계자들이 피아레 방카 에티카에 신청을 하면, 신용과 적정성 등에 대한 심사가 이뤄진 뒤 개별 프로젝트마다 금리가 결정됩니다. 대출 심사 과정에서 경제적인 부문은 본부에서, 윤리적인 부문은 지역 윤리위원회에서 담당합니다.
양쪽의 승인이 동시에 이뤄져야 대출이 가능하고요. 이 곳도 별도의 배당 없이 100% 재투자를 원칙으로 합니다. 스페인 내 다른 일반 은행들에 비해 정기적금 금리 등을 높게 제공하고 있어서 수신 증가 속도가 가파른 편이라고 합니다. 대출 실행 속도보다 수신 증가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다고 하네요. 이 때문에 예대율(예금 잔액에 대한 대출 잔액비율)이 25%에 그치고 있고요.
사회적 금융을 실천하는 금융회사들의 장기적인 목표는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스페인에서 만난 피아레 방카 에티카 관계자들은 “금융회사로서 부를 창출해, 창출된 부를 도구로 삼아 금융 소외자들의 편의성을 높이는 역할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한국 신협 등 최근 한국에서도 각종 사회공헌재단을 통해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금융회사가 이런 가치를 추구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적 금융에 관심을 갖는 금융회사들이 조금씩 늘어난다면 분명 순기능도 있을 듯 합니다.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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