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식힌 소나기 골…한국축구, 피지 8-0'융단 폭격'
독일 리그 임대선수 맴돌다
올림픽 축구 본선 무대 한국선수 첫 해트트릭
후반 1분45초 사이 3골
신태용호, 역대 최다골
[ 최진석 기자 ]
무더위를 식혀준 ‘골 소나기’였다.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5일(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사우바도르 폰치노바 경기장에서 열린 피지와의 남자축구 조별리그 C조 1차전에서 8골을 퍼부으며 시원한 승리를 선물했다. 2회 연속 올림픽 메달 획득을 위한 화끈한 첫걸음이었다. 8골을 넣으며 한국 축구사의 새로운 기록도 쏟아졌다. 이 경기에서 해트트릭(3골)을 기록한 류승우(레버쿠젠)는 임대선수 설움을 떨쳐내고 ‘축구인생 최고의 날’을 맞았다.
◆포문 열리자 1분45초에 3골
전반전은 답답했다. 첫 골이 전반 32분에야 나왔다. 류승우가 권창훈(수원)의 오른쪽 측면 크로스를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가슴으로 트래핑한 뒤 반 박자 빠른 발놀림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2분 후 류승우는 페널티킥도 유도했지만 문창진(포항)이 왼쪽 골대를 맞추면서 추가 득점에 실패했다.
골 소나기는 후반 17분부터 쏟아졌다. 문창진의 패 보?받은 권창훈이 골망을 흔들었다. 권창훈은 1분 뒤 류승우의 패스를 받아 추가 득점했다. 연이은 골로 피지 선수들이 혼이 빠졌을 때 류승우가 상대 수비수의 공을 빼앗아 다시 골을 넣었다. 1분45초 사이 나온 3골이었다. ‘골맛’을 본 선수들은 멈추지 않고 골대로 달려들었다. 후반 23분 투입된 손흥민(토트넘)과 석현준(포르투)이 주인공이다. 손흥민은 후반 27분 류승우가 유도한 페널티킥을 득점으로 연결했다. 석현준은 후반 32분과 후반 44분 연거푸 골망을 흔들었다. 경기는 후반 종료 직전 류승우가 세 번째 골을 넣으며 마무리됐다.
8 대 0의 대승을 거둔 한국은 최다 골 차 승리 기록을 기존 4골에서 8골로 대폭 늘렸다. 최다득점 기록(기존 6골)도 갈아치웠다. 1분45초 사이 3골을 몰아넣은 것도 남녀 통틀어 국제경기 최단시간 기록이다.
◆임대인생 류승우 ‘오늘만 같아라’
류승우는 한국 남자 축구 최초로 FIFA(국제축구연맹) 주관 세계대회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올해 23세인 그는 임대선수의 설움을 씻으며 팀의 주축으로 발돋움했다. 그는 2013년 K리그 클래식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뒤 임대 형식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과 계약했다. 이후에도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빌레펠트 등 1, 2부 리그를 오르내리며 임대선수 생활을 계속했다. 최근 레버쿠젠으로 복귀했지만 쟁쟁한 미드필더 경쟁 속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는 절망하지 않고 올림픽 준비에 열중했다. 홀로 대표팀 훈련센터가 있는 파주NFC에서 개인 훈련을 했다. 신태용 감독은 묵묵히 연습하는 류승우를 눈여겨봤고, 피지의 두꺼운 수비벽을 뚫는 역할을 맡겼다. 신 감독의 믿음을 류승우는 해트트릭으로 보답했다. 축구인생 최고의 날을 맞은 그는 “동료들이 좋은 패스를 해줬다”고 겸손해했다. 그는 “첫 단추를 잘 끼웠으니 남은 2·3차전에서도 분위기를 잘 살려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오는 8일 오전 4시 같은 경기장에서 ‘전차군단’ 독일과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