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기자의 Global insight
경기따라 실업률 출렁이지만 로봇의 노동 대체는 시기상조
되레 첨단산업 고용 늘어날 듯
[ 이상은 기자 ]
11년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경비로 일하시던 분이 어느 날 우편물을 전해주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한국경제신문 다니시는가? 내가 거기서 조판공으로 일했던 사람이오.” 그러니까 컴퓨터 인쇄 체제가 도입되기 전 기사 내용대로 인쇄기에 빠른 손놀림으로 활자를 짜맞추는 일을 하던 분이다.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안타깝기도 했다. 열심히 자기 몫을 다하고도 그저 기술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었을 그의 상실감이 함께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주장은 자연스럽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 이런 현상을 새로운 (경제적) 질병으로 비유하며 ‘기술적 실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52년 경제학자 바실리 레온티예프도 “노동은 점점 덜 중요해질 것이며 갈수록 더 많은 노동자가 기계로 대체될 것이다. 나는 새 산업이 일자리를 원하 ?모두를 고용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이 불면서 이런 위기감은 다시 커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20년까지 일자리 51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는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를 내놓은 것이 그 예다. 미래 상상도에 곧잘 등장하던 자율주행차가 벌써 도로를 달린다는 소식이 불안을 부추긴다. 로봇이 생산하면 인건비 지급→가계 소비지출→기업 매출 발생의 고리가 깨질 테니 일을 하든 안 하든 ‘기본소득’을 주자는 논의로 연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케인스나 레온티예프의 발언을 지금 돌이켜보면 갸우뚱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사축인간(회사가 가축처럼 부리는 인간)’이라며 일에 매여 사는 인생들을 자조하고 있지 않은가. 실업률이 경기에 따라 오르내리긴 했지만, 기계에 일을 빼앗겨 하릴없이 노는 시대는 오지 않았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로 잘 알려진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파스쿠알 레스트레포 예일대 박사후과정생은 지난달 초 유럽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포털에 게재한 논문에서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이 설득력 없다고 주장했다.
과거에도 계속 기술은 발전했지만 자동화·기계화 결과 일자리는 줄지 않았으며 오히려 관련 일자리가 새로 창출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1980년부터 2007년까지의 미국 고용 데이터를 분석해 이 기간 미국의 일자리가 감소하기는커녕 17.5% 늘었으며, 이 가운데 절반(8.84%) 정도가 신기술과 관련된 일자리라고 분석했다.
또 기술 발전으로 노동력에 들어가는 비용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새롭고 복잡한 업무의 수익성이 증가하고, 새롭고 복잡한 업무에선 사람(노동)이 기계(자본)보다 비교우위를 갖는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그러나 멀리서 볼 때는 매끈한 도로도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요철과 굴곡이 있다. 누구나 기술의 전환점에서 속절없이 밀려나는 조판공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한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은 시간, 노력, 돈, 네트워크 등이 두루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원거리에서 통찰을 찾는다면, 삶의 부침을 겪는 개인들은 가까운 정치에서 해법을 구하게 마련이다. 일자리에 대한 불안이 퍼질수록, 정치인들의 말은 거칠어질 것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