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합헌 이후] "김영란법 핑계로 인·허가 지연…공직사회 복지부동 더 심해질 것"

입력 2016-07-31 18:20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부패근절 취지 공감하지만 법 적용범위 너무 포괄적
민원인과 만남 자체 꺼리고 투자 막는 '소극행정' 우려

100만 공무원 부패집단 매도…공직자 불신 국가에 도움안돼


[ 강경민 기자 ]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사진)은 “김영란법이 오는 9월28일부터 시행되면 소극행정 등 공무원의 복지부동(伏地不動) 행태가 공직사회에 더욱 만연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무원들이 부정청탁을 받는다는 오해를 살까 봐 기업인 등 민원인과의 만남 자체를 꺼릴 것이라는 우려다.

이 전 처장은 3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의 공복(公僕)인 100만명 공무원 모두를 부패집단으로 전제하는 김영란법은 공직사회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 교직원 등을 대상으로 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은 지난 28일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받았다.

삼성그룹의 인사전문가 출신으로, 2014년 11월 공무원 인사를 총괄하는 인사혁신처장으로 임명돼 공직사회 개혁을 진두지휘하다 지난 6월 퇴임한 이 전 처장은 김영란법의 맹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공직사회 부패를 근절하겠다는 법의 취지에는 적극 공감한다”면서도 “법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모호한 부분이 많아 큰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선 모든 공무원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전제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전 처장은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막는 일과 법을 통해 상시 감시하겠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공무원들을 믿지 않는 게 국가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영란법은 잔디에 잡초가 섞여 있다는 이유로 잔디를 모두 죽여 잔디밭을 없애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집단사고의 맹점에서 비롯된 대표적으로 잘못된 법”이라고 덧붙였다.

배우자가 금품을 받았을 때 공직자 등이 이를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하도록 한 법 조항 역시 불신만 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배우자를 믿지 못하는 ‘의처(부)증’과 공무원을 의심하는 ‘의공증’이 확산돼 불신의 사회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사의 기본 원칙은 ‘불신’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게 30년 넘게 인사 업무를 한 이 전 처장의 소신이다.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는 공무원의 소극행정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부정청탁을 받아 부정행위를 저지른 공무원 등은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도록 했다. 이 전 처장은 “김영란법 적용 범위가 여전히 모호한 상황에서 어떤 공무원이 기업인을 선뜻 만나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공무원들이 김영란법을 핑계로 기업인 등 민원인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인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지연시키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했다.

이 전 처장은 “지금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더욱 판치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그는 많은 부작용이 예상되는데도 정부 부처가 김영란법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 전 처장은 “정부 부처 장관들 모두 이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어느 누구도 공식 석상에서 제대로 얘기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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