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빠진 '구로다 카드'…시장은 엔고로 답했다

입력 2016-07-29 17:51
ETF 매입 6조엔으로 증액

일은 총재 "대외 불확실성 우려"
국채 매입한도·기준금리 동결

기대 못미친 대책에 시장은 실망
엔화가치 한때 102엔대까지 급등


[ 도쿄=서정환 기자 ] 일본은행이 29일 상장지수펀드(ETF)의 연간 매입 금액을 현재의 두 배 가까이 확대하는 추가 양적완화를 결정했다.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선 것은 지난 1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기로 한 이후 6개월 만이다. 하지만 국채 연간 매입 한도와 마이너스 금리는 지금 수준을 유지하기로 해 시장 기대엔 못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채매입 한도는 현행 유지

일본은행은 이날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3조3000억엔 규모인 ETF 연간 매입 규모를 6조엔으로 늘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시중에 돈을 풀기 위해 사들이던 연간 80조엔 규모의 국채와 연간 900억엔 규모의 부동산투자신탁(리츠) 매입 한도는 현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금융회사가 일본은행에 맡기는 당좌예금 일부에 적용하는 마이너스 금리폭도 연 -0.1%로 동결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사진)는 기자간담회에서 “대외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기업과 가계의 자신감이 악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추가 완화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번이 구로다 총재 취임 이후 네 번째 양적완화다. 하지만 이번 정책은 정부 재정지출 확대와 최소한의 보조를 맞추는 수준으로, 시장 전망에는 크게 못 미쳤다. 금융시장에선 일본은행이 정부의 영구채(만기가 정해지지 않은 채권)를 사들이는 ‘헬리콥터 머니’ 정책까지 도입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었다.

이날 일본은행 발표 이후 도쿄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치솟고 주가는 출렁였다. 추가 양적완화 방안이 나온 뒤 엔화 가치는 104.8엔대에서 2엔가량 급락하며 달러당 102.71엔까지 떨어졌다. 닛케이225지수는 2%가량 하락한 뒤 전일 대비 0.56% 상승한 16,569.27에 마감했다. ETF 매입이 증시 수급에 도움을 줄 것이란 기대 덕분이다.

◆엔화 강세국면 진입 예상

일본은행이 이번에 ETF 매입 한도만 늘리기로 한 것은 일본 정부의 대규모 경제대책 효과를 본 뒤 대응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7조5000억엔 규모의 재정지출을 포함해 28조1000억엔 규모의 경기부양책 시행을 조율 중이라고 NHK가 이날 전했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0.5% 하락해 4개월째 내렸다. 경제산업성은 광공업 생산 기조 판단을 ‘일부 회복’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완만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2월 시행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대한 금융권의 반발이 거센 점도 일본은행엔 부담이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마이너스 금리 도입 후 4~6월 일본 3대 은행 지주회사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0%가량 급감했다. 여기에 국채 유동성 위축을 고려할 때 국채매입 한도 확대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BNP파리바에 따르면 올 연말 일본은행의 전체 발행잔액 대비 국채 보유 비중은 43%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엔화 가치는 그동안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에도 추가 양적완화 기대감으로 떨어졌으나 시장의 기대에 미흡한 이번 조치로 다시 강세 흐름을 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가라카마 다이스케 미즈호은행 수석마켓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연내 금리를 인상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며 “엔화 가치는 100엔을 넘어 두 자릿수에 안착하는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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