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격의료 수출?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다

입력 2016-07-28 18:11
한국의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원격의료가 10월부터 페루 필리핀 중국 등지에서 서비스를 시작한다. 의료기기 제약 등 보건 분야 수출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소위 ‘한국형 원격의료’가 해외로 뻗어나가는 셈인데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국내 현실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수출국가들에 보여줄 임상실적부터가 거의 없다. 1990년에 원격의료 논의가 시작됐지만 2014년에야 겨우 시범사업을 벌였을 정도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19대 국회에서 기한 만료로 자동폐기됐고, 20대 들어 정부가 다시 제출했지만 통과가 쉽지 않은 상태다. 자국에서 임상경험도 없는 서비스를 해외로 수출한다는 것부터가 난센스다.

원격의료는 새로운 거대 시장이다. 고령화가 가속화하고 IT가 발달할수록 시장은 더 커진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순방으로 수출길이 열린 중남미만 해도 보건·의료 시장이 600조원이 넘고 이 중 원격의료 시장은 12조원 규모다. 한국 의료기관들은 페루 필리핀 중국 외에도 브라질 칠레 멕시코 몽골 등과 이미 MOU를 체결해놓고 있다. 이들 나라는 국토가 넓고 인구 밀도가 낮아 원격진료 수요가 많다. 이들이 당장은 IT를 보고 한국 의료기관을 선택했겠지만 한국서는 불가능한 서비스라는 것을 알게 될까 두렵다.

국내 원격의료가 진전이 없는 것은 일부 의사들의 직역 이기주의와 이에 편승한 정치권 탓이다. 대학병원이나 대기업에만 이득이 된다며 의료 공공성이란 허울을 내세운 반대 논리가 25년간 망령처럼 떠돌았다. 의사집단은 시범사업이 성공해도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메르스 때문에 병원에 못 가는 환자를 위한 전화 처방을 허용했을 때도 원격의료로 가기 위한 음모라며 몰아세웠다. 그 와중에 섬에 사는 노인들이 고혈압약 처방을 받기 위해 2개월에 한 번은 육지로 나와야 하는 저개발국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의사 출신인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리더십을 갖고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외국에선 가능한 원격의료가 정작 한국에선 불가능하다는 것이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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