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케인스(1883~1946)는 공무원 집단을 ‘선량한 엘리트’로 간주했다. 이는 ‘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유효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해법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탄생한 케인스 경제학은 1930년대 대공황 극복에 일조했다. 나아가 20세기 전반을 풍미한 사회주의의 진군을 고군분투로 저지했다. 일견 부러움의 대상인 서유럽 복지국가 모델도 그의 유산이다.
압도적인 케인스의 명성은 하지만 반세기를 못 갔다. 1970년대부터 비주류로 밀리더니, 근자에는 ‘케인스는 미신’이라는 굴욕적인 평가마저 등장했다. 케인스의 쇠락은 ‘유능한 공무원들의 착한 정부’라는 비과학적 가설에서 잉태됐다. 소위 ‘하비가(街)의 전제’로 불리는 오류다. 하비가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인근으로, 그가 성장한 거리다. 그곳에서 케인스는 지적이고 열정적인 이웃들과 교류했다. 명문가 출신의 정치가이기도 했던 그에게 ‘선량한 공무원’이라는 전제는 자연스러웠겠지만, 현실은 달랐던 것이다.
잇따르는 공직자들의 일탈
한국 공직자들의 타락을 케인스가 목격했다면 다른 이론을 전개했을 듯싶다. 공 ㅀ킹÷㎰廢릿?얼마 전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를 불허해 케이블업계를 고사 위기로 밀어넣었다. ‘권역별 점유율’ 등의 시대착오적 판정 기준은 실소를 부르기에 충분했다. 4년을 조사하고도 무혐의로 종결된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건은 관료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공정위의 안하무인식 폭주가 민간 상임위원들에 의해 제지되지 않았다면 얼마나 치명적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아찔할 뿐이다. ‘공짜 주식’을 받은 진경준 검사장의 일탈은 공직자의 관심이 공익 수호가 아니라 사익 추구라는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무소불위의 검찰권이 치부 수단으로 전락한 대목에서는 뒷골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다.
공직자가 공복(公僕)이 아니라는 심증을 확신으로 몰고간 주역은 국회의원들이다. 여당의 ‘친박 실세’라는 TK의원들은 영남권 신공항과 사드(THAAD) 후보지 선정 과정에서 몇 장의 표를 위해서라면 국익도 배신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몇몇 호남 정치인은 ‘5·18특별법’이라는 반지성적 입법으로 사상의 계엄령을 선포할 태세다. 정치적 계산으로 청년수당이니 뭐니 하며 세금을 쌈짓돈처럼 퍼주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행보는 또 어떤가.
구조적 타락에 제동 걸어야
이쯤되면 상당수 공직자가 자영업자와 다를 바 없다는 서글픈 현실에 직면한다. 자영업자의 목표가 수익 극대화이듯, 공직자의 최우선 순위도 승진 연봉 예산 위신 등 개인적 이익이라는 얘기다.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뷰캐넌(1919~2013)은 케인스와 정반대로 ‘불량하고 무능한 공무원’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는 출세와 승진을 위해 물불 안 「??‘나쁜 관료’가 최종 승자가 된다고 진단했다. 고위 공직자일수록 비양심적일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이런 생각을 ‘공공선택 이론’으로 발표해 노벨경제학상도 탔다.
관료의 타락은 개인적 성품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과 도산 걱정이 없는 독점구조에서 비롯된다. 불량·무능해진 공직자의 최종 목표는 ‘지대 추구’일 것이다. 공익 정의 복지 등의 명분을 앞세우지만, 권력과 규제의 공고화를 통한 독과점적 이익 향유에 매몰된다. ‘효율적인 작은 정부’의 최대 장애물이 공직자인 것이다. ‘공시’에 목맸다는 한국 청춘들은 이런 구조적 모순에 맞설 용기가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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