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경부암 문진하다 범법자 취급받는 의사들

입력 2016-07-20 18:39
현장에서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


[ 이지현 기자 ] 지난달 20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2003년 1월1일부터 2004년 12월31일 사이 태어난 여성 청소년에게 자궁경부암 백신을 무료로 접종하는 ‘건강 여성 첫걸음 클리닉 사업’을 시작했다. 백신 접종과 함께 여성건강 상담을 시작해 청소년기부터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도록 한다는 취지다.

이 사업에 참여를 원하는 청소년이 의료기관을 찾으면 체크리스트에 따라 초경 여부, 월경 관련 증상 등에 대해 의사와 상담한다. 초경 시작 시기, 월경 시작일, 월경통의 정도, 월경량 등 비교적 상세한 답변서에 답변해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환자가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의사는 백신 접종을 위한 상담 때문에 아동청소년 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인력 부족 등으로 환자를 혼자 진료해야 하는 보건소 공중보건의사들은 복지부에 백신 접종 상담 과정에 보조인력을 배석시켜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여성가족寬?한 개원의사에게 보낸 한 통의 답변서가 논란이 됐다. 조창식 일반과개원의협의회 부이사장은 여가부에 “의사가 질문을 해 여성 아동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민원을 제기하면 여가부는 어떻게 판정하겠느냐”고 물었다. 여가부는 “여자아이나 부모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생각한다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 구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사업에 참여한 의사에게 환자가 수치심을 느낀다면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답변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의사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성명을 내고 여가부 답변에 정정을 요구했다. 이충훈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의사들이 정당한 진료행위를 했음에도 여성 청소년이 수치심을 느껴 인권위 조사가 이뤄진다면 어떤 의료인이 적극적인 진료행위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발끈했다.

성범죄 의료인에 대한 규제 목소리가 커지면서 의사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길거리에서 심정지를 당한 환자를 만나도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이야기까지 나온다. 비단 자궁경부암 백신 문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료행위와 범법행위는 구별돼야 한다. 의사의 진료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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