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주도 제조강국' 계획에 선제 대응
자본합작·기술제휴·국제표준 제정 통해 '윈윈'
대륙 내수시장·글로벌 신시장 공동개척 모색
미국 AMD·퀄컴·마이크론 등도 '공생전략' 가동
[ 김현석 / 남윤선 기자 ]
작년 3월 중국 정부가 발표한 ‘중국제조 2025’ 전략은 한국 기업엔 위협 그 자체였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자동차 로봇 해양플랜트 바이오의약품 등에서 중국 기업이 세계적 수준에 올라갈 때까지 지원하겠다는 계획이어서다. 이들 사업은 모두 국내 기업의 주력 및 신수종 사업과 겹친다. 중국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
비상이 걸린 기업들은 대책을 마련해왔다. 삼성은 중국 기업과 경쟁도 하지만,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제휴하는 등 상생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중국 전기차 1위 업체 비야디(BYD)에 지분을 출자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상생해야 생존한다”
삼성전자의 중국 내 매출은 2013년 40조1512억원에서 2014년 33조263억원, 지난해 30조9862억원까지 급감했다. 스마트폰에선 화웨이 샤오미 오포 비보 등에, 가전과 TV에선 하이얼 TCL 등에 조금씩 밀려서다. 현대자동차그룹도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12년 10.5%였으나 2013년과 2014년 10.4%로 정체된 뒤 지난해 8.9%로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지난해 제조강국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국가 주도의 기업 간 인수합병(M&A) 유도, 경쟁력 있는 산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 2025년까지 주요 산업에서 세계적 기업을 키워내겠다는 것이다.
계획도 구체적이다. 전기차에선 2020년까지 글로벌 10위권 기업을 1개, 2025년까지는 2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반도체에선 모바일용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35%, 2025년 40%로 높이기로 했다.
삼성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향후 중국 내수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중국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삼성은 그동안 중국에 나갈 때 단독으로 법인을 세우거나 피치 못할 때 지방정부의 투자 등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젠 중국 기업과 적극적으로 제휴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자본 합작, 기술 제휴, 국제표준 공동 제정 등을 통해 ‘윈윈’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을 업고 강해진 중국 기업들과 무작정 경쟁하다간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BYD와의 제휴가 대표적 사례다. 삼성전자는 BYD와의 제휴로 뒤늦게 시작한 전장사업에서 대규모 납품처를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BYD에 추가 지분 투자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 TCL그룹의 리둥성 회장과 만난 뒤 액정표시장치(LCD) 분야에서 제휴를 확대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TCL은 디스플레 ?자회사로 차이나스타(CSOT)를 거느리고 있다.
◆중국·미국 합작도 잇따라
글로벌 기업도 잇따라 중국 기업과 손잡고 있다. 첨단 기술을 배우려는 중국 기업과 중국 시장에서 공생하려는 글로벌 기업 간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AMD는 지난 4월 중국 THATIC과 서버용 반도체 개발을 위한 합작사를 세웠다. THATIC은 국영 투자회사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 등에서 서버를 수입하면서 보안에 위협을 느껴왔다. 데이터가 서버를 통해 유출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자체적으로 서버를 구축하고 싶었지만 기술력이 부족했다. 이를 위해 AMD와 손잡았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AMD는 2억9300만달러(약 3300억원)의 특허사용료를 챙기고, 중국산 서버에 들어갈 반도체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퀄컴은 지난해 중국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SMIC와 합작사를 설립했다. 최고경영자(CEO)는 SMIC 측이 맡고, 퀄컴은 기술을 대기로 했다. 합작사 설립 기념식 때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했다.
올초 3차원(3D) 낸드플래시 공장 건설을 시작한 중국 XMC는 미국 마이크론으로부터 제조 기술을 수혈받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석/남윤선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