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인 검찰 수사로 롯데그룹이 운영자금 조달에 큰 애로를 겪고 있다는 한경 보도다. 롯데케미칼 호텔롯데 롯데칠성 등 주요 계열사조차 회사채와 ABS 발행이 막혀 CP(기업어음)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사채발행이 어렵거나 급전이 필요할 때 활용하는 단기자금 조달 수단이 CP다.
그룹 최상층부를 겨냥한 검찰수사로 시장의 신뢰가 추락했다는 방증이다. 롯데는 국내 5위의 탄탄한 그룹이고 현금회전이 빠른 유통산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신용경색이 장기화한다면 견뎌내기 어렵다. 1년 전 이른바 ‘형제의 난’이 터진 뒤에도 회사채 발행이 정상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검찰 수사의 여파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롯데쇼핑 상장이 무기 연기된 데 이어 제2파가 덮친 것이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롯데를 파괴하기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더 우려되는 건 장기수사 가능성이 높아진 점이다. 사상 최대인 약 500명이 투입돼 계열사 자택 협력업체 등 32곳을 무차별 압수수색했지만 속도를 더는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물론 성과가 전혀 없지는 않다. 면세점 입점 대가로 수십억원의 뒷돈을 챙긴 신영자 이사장을 구속했고, 회계조작으로 세금 270억원을 빼간 죄상도 밝혀냈다. 하지만 신동빈 회장의 비리 등 소위 핵심적인 혐의에 대한 입증은 더디다. ‘압수한 회계자료를 분석하면 비자금 여부가 금방 드러날 것’이라던 장담이 무색해졌다.
자신만만하던 검찰의 자세에 변화가 감지된다. ‘수사 기한을 정한 적 없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 기업비리와 정경유착 관행은 철저히 파헤치고 엄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본때를 보여주겠다’거나 ‘뭐라도 걸리지 않겠느냐’는 식이라면 시대역행이다. 스스로 말해온 것처럼 기업 수사는 환부만 도려내는 정밀한 외과수술이어야 한다. 자칫 정치적 프로세스로 진입한다면 검찰 자신의 늪이 될 뿐이라는 점은 얼마 전 포스코와 KT&G 수사에서 입증됐다. 있는 것은 있는 대로, 없는 것은 없는 대로 빨리 결론내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