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가 바꿔놓은 유럽
연금생활자 "우리가 희생양이냐"
[ 박동휘 기자 ]
“예금 이자가 ‘제로’에 가까운데도 은행 예금이 늘고 있다.”(야니 실벤 스웨덴은행연합회 수석자문관)
마이너스 금리 시대의 역설이라 할 만한 현상이다. 여유 자금을 굴려봐야 돈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대안을 찾는 게 ‘상식’이겠지만 금융 소비자들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다.
마이너스 금리 환경에서 금융 소비자들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2012년에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한 덴마크가 이제 4년, 유로존 19개국은 갓 2년을 넘긴 터라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아직 유럽의 금융 소비자 대부분은 기존의 자산배분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행에 돈을 넣어봐야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국채는 사봤자 이자를 받기는커녕 만기에 원금도 못 건지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머니 무브’가 본격화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소비자들이 처한 상황은 최악에 가깝다.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에 따르면 스위스에서 일반 개인이 은행에 예금했을 때 받는 이자는 연 0.3% 내외로 2010년에 舟?‘반 토막’으로 떨어졌다. 보험사가 판매하는 이율보장형 상품의 최저 금리도 0.75%(올 1월 기준)로 전년 대비 0.5%포인트 줄었다. 5~7년물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지는 1년이 지났고, 최근엔 장기(13년물) 국채 금리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스위스 가구의 금융자산 중 75%가 예금, 국채, 연금 등 안전자산에 몰려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앙’에 가까운 금융 환경이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고령층 연금생활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정부만 살찌우는 경기부양책이란 지적도 나온다. 스위스, 스웨덴 등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경제 지표가 양호한 국가들만 해도 마이너스 금리로 국채를 발행해도 수요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된 국채는 세계적으로 12조달러에 달한다.
기업들과 관련한 마이너스 금리 효과는 가늠하기 힘들다. 양면성이 존재해서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측면에서 보면 이자를 거의 내지 않고도 빌릴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하지만 싼 금리의 대출이 ‘좀비 기업’을 연명시키면서 산업 구조조정을 더디게 한다는 점은 부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도덕적 해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칫 ‘기업 빚을 권장하는 사회’가 될 것이란 우려다.
스톡홀름·취리히=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