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만 9개…주성엔지니어링의 '혁신 자신감'

입력 2016-07-13 15:09
수정 2016-07-14 09:29
적자에도 고집스러운 R&D 투자
지난해 '실적 턴어라운드' 성공


휘어지고 투명한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주도할 것"


[ 안재광 기자 ]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업체 주성엔지니어링의 경기 광주 본사 건물 벽면에는 3층 높이의 초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다. 산업 국가대표로 뛰고 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직원들에게 불어넣기 위해서다. 요즘 이 태극기 옆에 중국 국기(오성홍기)가 걸렸다. 최근 방문이 부쩍 잦아진 중국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들을 위한 것이다. 여기엔 “빠르게 커가는 중국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주성엔지니어링을 비롯한 한국 기계로 만들게 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사진)은 “혁신 제품으로 세계 장비업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놓겠다”고 강조했다.

나사못 하나도 직접 만들어


주성엔지니어링은 ‘벤처 1세대’로 불리는 황 회장이 1995년 설립한 기업이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는 1993년 ASM이 한국에서 철수하자 창업을 결심했다.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의 반도체 투자가 본격화한 시기였다. 미국 일본 등 해외 기업에 의존하던 반도체 제조 장비를 국산화하겠다는 게 황 회장의 계획이었다.

초기 국산화에 성공한 품목은 반도체 증착장비(CVD)였다. 반도체 웨이퍼나 LCD 유리기판에 분자 또는 원자 단위의 물질을 미세하게 입혀 전기적 특성을 지니게 하는 장비다. 얇고 균일하게 박막을 입히는 게 장비의 성능을 좌우했다.

황 회장 이전에도 국산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성공한 경우는 없었다. 국산화하기에는 기술장벽이 높았기 때문이다. CVD 장비는 반도체 전공정에 쓰인다. 전공정 장비는 덩치가 대체로 크고 높은 기술력을 요구해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소수 업체만 제작했다. 후발 장비업체 대부분은 기술장벽이 다소 낮은 후공정 장비에 집중했다. 나사못조차 반도체 장비에 맞는 게 국내에 없던 시절, 황 회장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부품을 설계하고 이를 제작할 수 있는 공장을 찾아 전국을 다녔다.

미세공정으로 시장 장악

주성엔지니어링은 국산화에 그치지 않고 세계 최초, 유일의 제품까지 내놨다. 설립 이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장비만 9개에 이른다. 2005년 개발한 ALD(atomic layer deposition: 원자층 증착) 장비가 대표적이다.

이 장비는 반도체 웨이퍼에 얇고 균일한 가스막을 증착하는 역할을 한다. 기존 CVD 장비 대비 100분의 1 수준으로 얇은 막을 입힐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반도체가 점점 미세공정으로 가면서 더 얇고 균일하게 가스막을 입히는 게 중요하다’고 황 회장은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엔 상업성이 없다며 양산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많았다. 얇게 증착하는 대신 속도가 느려 생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장비는 주성엔지니어링의 주력 상품이 됐다. 올해 주성엔지니어링이 수주한 반도체 장비 모두가 ALD 제품이다. SK하이닉스가 2005년 처음 ALD 장비를 들인 이후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제조 장비가 가장 앞서간다는 평가를 듣는다. 주성엔지니어링의 OLED 봉지장비는 8세대 이상 대화면 OLED 공정에선 유일하게 쓰인다. OLED 봉지장비는 디스플레이 내부에 수분, 산소 등이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대화면 OLED 시장을 장악한 LG디스플레이가 주로 이 장비를 사간다.

지난해 실적 ‘턴어라운드’

주성엔지니어링이 ‘승승장구’만 한 것은 아니다. 산이 깊으면 골도 깊듯 큰 성공 뒤에 큰 아픔도 겪었다. 2000년대 후반 주성엔지니어링은 대규모 태양광 장비 수주에 성공하며 급성장했다. 연간 1000억원대 매출이 2010년 4000억원을 넘어섰다. 그해 500억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태양광산업이 꺾이고 장비업계가 공급 과잉 상태가 되자 위기가 찾아왔다. 태양광 장비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게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까지 좋지 않자 한 해 1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기도 했다. 이때도 주성엔지니어링은 연구개발(R&D)에 고집스럽게 투자했다. 어려운 시기를 넘길 힘은 R&D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11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2012년 매출의 73%인 563억원을 R&D에 쏟아부었을 정도였다.

회사는 惻??‘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영업이익 145억원, 당기순이익 66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1분기 533억원의 매출과 7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은 57.8%, 이익은 757.1% 증가했다. 재무 건전성도 좋아졌다. 2013년 2065억원에 달하던 차입금은 작년 말 963억원으로 줄었다. 부채비율은 2013년 말 273%에서 올 1분기 말 147%까지 내려갔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세계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판단이다. 디스플레이산업이 한국이 주도하는 OLED로 넘가가고 있어서다. OLED 분야에선 미국,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표준이라는 게 황 회장의 설명이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투명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대에도 대비하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제조장비에 대한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황 회장은 “디스플레이가 휘어지고, 투명해지면 지금보다 수요가 5~6배 이상 뛸 것”이라며 “차세대 디스플레이 장비 시장의 생태계를 한국이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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