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욱순 "삼성서 일하며 배운 '절제·결단·약속'…골프스포츠파크 꿈 이룰 주춧돌 됐죠"

입력 2016-07-07 18:29
프로골퍼서 사업가로 변신한 강욱순 강욱순스포츠(주) 대표

1300억대 안산스포츠파크 연내 완공
맨땅에 헤딩하기식 공모 참여…10개 전문기업 제치고 개발사 선정

50㎝짜리 파 퍼트 놓쳐 미국 정규 투어 진출 실패
2부투어 치열하게 뛰며 현지 교육시스템 직접 경험


[ 이관우 기자 ]
“돌아서면 회의하고 밥 먹고 나면 또 회의하고…. 얼마나 회의가 많은지 선수 때도 멀쩡하던 허리가 망가지더라고요. 허허!”

지난 6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안산스포츠파크 건설현장. 현장을 진두지휘하던 그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서 험난한 ‘사업가의 여정’이 묻어나왔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는 물론 아시안투어까지 평정했던 ‘전설의 골퍼’ 강욱순 강욱순스포츠 대표(51)다.

‘강도사’라는 별칭만큼 독종으로도 유명한 그였지만 허허벌판에 대규모 스포츠테마파크를 세우는 일은 녹록지 않은 도전이었다. 지난해 10월 착공한 현장 상황을 진지하게 설명하던 그는 “골프보다 사업이 100배는 더 어려운 것 같다”며 “다시 태어나면 사업엔 손도 대지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30년 넘게 골프에만 전념해온 이력에 비춰보면 첫 사업 규모가 상당하다. 그는 2008년 안산시가 공모한 민자개발 투자사업 아이디어 공모에 ‘맨땅에 헤딩하기식’으로 기획서를 내 10개의 전문기업을 제치고 1등으로 선정됐다. 7만7249㎡(약 2만3358평) 규모의 시유지 땅값만 따져도 1000억원 안팎이고, 건물과 설비비 등을 다 합하면 1300억원대에 이르는 대규모 사업이다. 120타석짜리 골프연습장은 물론 9홀짜리 파3 코스, 어프로치샷 전용 타석, 수영장, 호텔식 사우나, 피트니스장, 테니스장, 배드민턴장, 족구장 등 다양한 생활체육시설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그는 “올해 말 완공해 내년 3월 문을 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외에서 통산 18승을 올린 전설의 골퍼다. 보너스를 제외한 상금만 족히 수십억원대다.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살 수 있는데도 굳이 어려운 사업에 뛰어든 건 선진화된 골프 교육 시스템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서다.

“외국 골프 전문가들에게 한국은 골프는 잘하는데 스윙이 똑같고 선수로서 롱런을 못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듣고 생각한 게 있었습니다. 후배들이 몸에 무리가 가는 스파르타식 획일화 교육 대신 행복한 맞춤형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꿈이 생긴 계기죠.”

그가 2003년 50㎝도 안되는 짧은 퍼팅을 놓치면서 1타 차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 낙방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한때 최경주(46·SK텔레콤)를 능가하는 유망주로 평가받던 그지만 그 퍼트는 인생을 바꾸는 운명의 한 타가 됐다.

“빵을 제대로 못 먹어서 풍토병이 생기는 등 현지 적응이 생각처럼 쉽지 않아서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최)경주는 빵을 너무 좋아했고요. 그 차이가 둘의 운명을 가른 게 아닌가 가끔 생각하기도 해요. 허허.”

대신 2부투어를 치열하게 뛴 게 자산이 됐다. 스포츠과학을 기반으로 한 맞춤형 아카데미와 퍼팅, 드라이버, 쇼트게임 등 분야별로 세분화된 아카데미 시스템을 두루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구체화된 구상이 ‘원스톱 골프아카데미’다.

“국내에선 골프 한 번 배우려면 하루종일 걸립니다. 헬스장 골프연습장 멘탈훈련센터 등이 곳곳에 분산돼 있거든요. 학생들이 무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런 불편을 없애 피트니스와 기술훈련, 식이요법, 멘탈, 휴식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게 사업의 핵심이다.

운동선수는 사업에 성공하기 힘들다는 편견도 확실히 깨고 싶다고했다. 그는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고, 운동 이외의 분야에도 도전할 꿈을 심어주는 일이기 때문에 한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4개월 전 술을 완전히 끊었다. 골프도 거의 치지 않는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공사장을 한 바퀴 돌고 부족한 부분을 찾는 것이 그가 꼭 지키는 하루의 ‘루틴’이다.

삼성과의 인연도 꿈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됐단다.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삼성그룹의 후원을 받고 투어를 뛴 그는 에버랜드와 안양베네스트에서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과는 경영전략회의와 회식 자리, 해외출장에 동행하기도 했다.

“저를 자주 불러주시기도 했지만 기를 쓰고 회의나 회식 자리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어요.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도 그렇고, 배울 게 너무 많았거든요.”

그는 이때 배운 걸 절제와 결단, 약속이라는 세 가지 단어로 요약했다.

“결정하기 전까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지만 한 번 결단을 내리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무섭게 직진한다는 기업문화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게 약속이었고요.”

‘골프보다 더 어렵다’는 그의 사업도 벌써 9부 능선을 넘겼다. 실패하면 고향 경북 영덕에 내려가 농사짓고 살자는 심정으로 배수진을 쳤더니 하나둘 문제가 해결됐다고 한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다 보니 “첫 사업을 너무 통 크게 욕심내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비아냥도 기분 좋은 걱정으로 들리곤 한다.

올라가는 건물을 보면 하루하루 꿈이 이뤄지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하다는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골프 기술과 명상 등 동양적 가치를 접목한 한국형 골프 교육 시스템을 완성해 세계 시장으로 역수출하는 게 새로운 목표”라고 말했다.

안산=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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