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생체인증을 통한 금융 보안이나 결제는 공상과학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술이었습니다. 로봇이 알아서 자산을 관리해주고, 가상현실 속에서 아바타 은행원이 투자 조언을 해주는 일은 영화에서도 '과연 가능할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정도였죠. 불과 수년 만에 이런 모습이 우리 현실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정보기술(IT)의 급속한 발전이 금융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는 겁니다. [한경닷컴]은 '테크(기술)가 그리는 금융의 미래'란 주제로 기술 발전이 5년, 10년, 20년 뒤 우리의 금융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지 내다봤습니다. 달라질 금융 라이프, 한번 상상해볼까요. [편집자주]
[ 권민경 기자 ]
숀 코너리와 해리포터의 나라, 데비이드 베컴의 두 발을 다 가진 나라 영국의 금융 변화를 1편에서 알아봤습니다.
당장 급격한 변화보다는 '혁신'과 '경쟁'을 중요시하는 인식 속에 다양한 협업이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했죠.
하지만 눈에 보이는 뭔가가 좀 필요합니다. 2편에서는 기술을 만난 영국 금융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 지 실제적인 모습을 엿볼까 합니다.
2006년 영국 런던으로 온 에스토니아인 타벳 힌리커스 씨. 그는 에스토니아에 있는 자신의 계좌에서 영국의 계좌로 송금을 해야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매번 송금을 할 때마다 5%의 수수료를 내야했는데 여간 아까운게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크로시토 카르만 씨도 영국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에스토니아의 주택담보대출금을 갚기 위해 정기적으로 에스토니아에 돈을 보내야했죠.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이 두사람은 아이디어를 냅니다. 힌리커스 씨는 에스토니아에서 영국의 계좌로 송금할 돈을 카르만씨의 주택담보대출금을 갚아주는데 썼습니다. 반대로 카르만씨는 매번 영국에서 에스토니아로 보내던 돈을 바로 영국에 있는 힌리커스 씨에게 보낸 것이죠.
세계 최대의 개인간(P2P) 해외 송금업체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는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트랜스퍼와이즈는 이처럼 국제 송금이 필요한 개인들을 연결해주고 시중은행보다 낮은 외환송금 서비스 수수료 받는 영국의 대표 핀테크 업체입니다.
지난 3월부터는 국내 결제대행업체인 페이게이트(PayGate)와 손을 잡고 해외에서 한국으로 돈을 보내는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4일 기준으로 시중은행에서 1000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면 약 115만원이지만 트랜스퍼와이즈에서는 약 113만원입니다.
수수료는 시중은행이 약 46달러(5만3958원), 트랜스퍼와이즈가 약 14달러(1만6422원)입니다. 트랜스퍼와이즈를 이용하면 상당한 돈을 아낄 수 있는 것이죠.
핀테크 외에도 영국은 알파고의 고향답게 로보어드바이저가(로봇+투자전문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영국 최대 국영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는 올해 3월 가입자를 상대하는 투자자문사를 줄이고,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는 넛맥(Nutmeg)입니다. 증권 중개인이었던 닉 헝거포드 씨는 투자업계가 투명하지 않다는 것에 실망감을 느끼고 증권 중개인을 그만두고 넛맥을 세웠습니다.
넛맥은 자산관리 서비스와 조언 등을 온라인으로 자동화해 제공합니다. 수수료는 시중 자산운용사보다 0.29%~0.94%포인트 저렴합니다. 올해 초에는 최소 투자 금액을 1000파운드(약 160만원)에서 500파운드(약 80만원)로 낮췄습니다. 자산이 많지 않은 사람들도 양질의 투자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가상현실(VR)과 같은 신기술을 이용한 서비스도 등장했습니다. 런던에 있는 VR 콘텐츠 제작사인 비주얼라이즈(visualise)는 VR기기와 인터넷 등을 이용해 부동산 투자 관련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오클러스 리프트, 삼성 기어 등의 VR 기기를 쓰고 실제 사고싶은 집에 간 것 처럼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버츄얼 워크스루(Virtual Walkthrough)'는 구글맵과 같은 360도 VR 茱珦?이용해 부동산 투어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지난해부터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회사인 'CBRE'와 손을 잡고 영국에 가상 부동산 투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금융과 기술의 만남으로 인한 변화, 비단 영국의 얘기만은 아닙니다. 영국과 더불어 세계 금융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어떨까요.
뉴욕 월스트리트의 대표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전통적으로 부유층과 대기업 고객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자체 기술개발에만 의존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핀테크의 등장과 디지털화로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변화한 사업 환경에 대응하는 모습입니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IT 기업이다"라고 언급하며 보수적인 금융인들의 인식 전환을 강조했습니다.
또 스퀘어, 블루핀 페이먼츠 등 핀테크 기업과 켄쇼 테크 등 빅데이터 분석 관련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현재 켄쇼를 활용해 방대한 금융 데이터를 분석해서 투자자자산을 관리하고 있죠.
피델리티운용사는 가상현실 기기 '오큘러스 리프트'를 통해 데이터를 시각화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명 '버츄얼 스톡 시티'(Virtual Stock City)라는 건데요.
포트폴리오 내 주식들의 가격과 거래량 등을 스톡 시티 내 건물의 높이와 너비로 표현하고 주식 시장 랠리를 태양이 강하게 비치는 형태로 표현하는 등 3차원 그래픽을 통해 포트폴리오의 직관성을 높였습니다.
피델리티운용사가 VR 기술을 도입한 건 비디오게임에 익숙한 세대에게 투자의 기본을 알려주고 고객 경험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웰스파고 은행 역시 VR과 금융 서비스의 접목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피델리티운용사와 마찬가지로 '오큘러스 리프트'를 이용해 가상 점포 데모를 공개했고, 가상 현실 브랜드 스토리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헤지펀드 투자 기관인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는 IBM의 인공지능 로봇인 '왓슨' 개발을 주도한 데이비드 페루치를 필두로 하는 인공지능(AI) 팀을 신설하기도 했죠. 딥 러닝 기술 기반의 투자 알고리즘을 개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외에도 뉴욕 소재의 투 시그마와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를 포함한 많은 헤지펀드 및 투자회사들이 AI 전문 인력을 채용하고 투자 기술을 개발해 운용하고 있습니다.
☞ [테크가 그리는 금융의 미래 ③] 'IT강국'인 한국은 왜 금융IT 후진국일까?
런던·서울= 권민경/김근희/장세희 한경닷컴 기자 kyoung@hankyung.com